노르웨이 라면 왕으로 불리는 이철호 사장(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K-라면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불닭 신화'를 쓴 삼양식품을 비롯해 농심과 오뚜기가 대표적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수출액 중 라면은 6억1660만 달러로 28.9% 증가하며 수출을 견인했습니다. 미국, 중국이 각각 K-라면의 핵심 시장입니다. 각 라면 기업은 글로벌 사업을 확대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세계시장에서 '라면 왕' 타이틀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데 '원조 라면 왕'이 있었다는 걸 아시나요. 주인공은 노르웨이에서 시장 점유율 95% 이상을 달성한 '미스터 리' 고 이철호 사장입니다.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이 사장은 6·25 전쟁 중 가족과 헤어지고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일했습니다.
이 사장은 북한군의 폭격으로 고관절이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는데요. 당시 한국에서는 치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 사장의 생명은 위독했습니다. 하지만 미군 병사의 도움으로 노르웨이 야전병원을 거쳐 1954년 노르웨이로 이송됐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노르웨이 이주 사례입니다.
치료를 받은 이 사장의 인생 오르막길은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홀몸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는 구두를 닦거나 신문 배달, 야외 화장실 청소 등 가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밥을 먹을 돈이 없을 때는 가축 사료를 먹으며 견뎠습니다.
이 사장은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현지에서 노력 끝에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스위스 유학까지 다녀왔습니다. 이후 오슬로 유명 레스토랑 체인점의 총지배인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위기를 겪었습니다. 다니던 회사가 매각됐기 때문입니다.
이 사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라면 사업가로 변신했습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매운맛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현지 입맛을 맞추기 위해 이 사장은 입맛에 맞춰 닭고기맛, 쇠고기맛 등 국물 라면을 개발 자신의 이름을 딴 미스터 리 라면을 출시했습니다. 이 때문에 노르웨이에서는 미스터 리가 곧 이철호라는 고유명사가 됐습니다.
이 사장은 한국을 떠나 살았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맛 표기는 반드시 한국어로 했습니다. 전쟁의 아픔을 겪은 이 사장은 참전용사 돕기도 꾸준하게 나섰습니다. 그 결과 노르웨이 국왕으로부터 훈장도 받았습니다.
가난과 전쟁을 견뎌낸 소년은 결국 노르웨이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라면 브랜드를 만든 사업가가 됐습니다. 원조 라면 왕이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