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재벌가의 낯부끄러운 ‘형제의 난’ 뉴스를 접할 때면 으레 궁금했다. 이미 가질 만큼 가진 핏줄끼리 대체 왜 그토록 진흙탕 싸움을 벌일까. 지인의 대답은 명쾌했다. “나눌 게 많으니까 다투는 겁니다.” 척박한 결핍보다 넘치는 풍요가 빚어내는 갈등이 때로는 더 지독한 법이다.
경제학에는 ‘자원의 저주’라는 용어가 있다. 천연자원이 넘쳐나는 국가가 오히려 몫을 차지하려는 내부 쟁탈전에 휩싸이며 빈곤과 내전으로 무너지는 현상을 말한다. 14세기 사상가 이븐 할둔 역시 저서 ‘역사서설’에서 비슷한 통찰을 남겼다. 사막의 척박함 속에서는 생존을 위해 끈끈한 ‘연대 의식(아사비야)’으로 뭉치지만, 도시에 정착해 풍요를 누리기 시작하면 그 결속력은 사치와 이기심 속에 필연적으로 ‘붕괴’한다는 것이다.
이 무서운 역설은 국가를 넘어 기업 생태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최근 삼성전자가 마주한 갈등이 정확히 같은 궤적을 밟고 있다. 전례 없는 반도체 호황으로 곳간을 든든히 채웠지만, 밖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부는 안으로 들어와 아군을 찌르는 칼이 됐다. 메모리와 비메모리, 완제품 부문 직원들은 성과급 격차를 두고 “토사구팽 당했다”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들겠다”며 날을 세운다. 종합전자회사라는 거대한 배가 외부 암초가 아닌, 내부 몫 나누기 과정에서 삐걱거리는 형국이다.
오랜 암흑기를 버텨낸 조선업계 역시 아사비야의 붕괴를 겪고 있다. 생존 자체가 지상 과제였던 보릿고개 시절에는 구성원 모두가 묵묵히 고통을 분담했다. 하지만 수주 호황으로 모처럼 곳간에 온기가 돌자, 그동안 억눌렸던 보상 갈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위기와 결핍은 사람을 묶었지만, 풍요와 분배는 사람을 갈라놓고 있는 셈이다.
중후장대 업계로 보상 갈등이 번지는 가운데, 고려아연은 아직 이를 비껴간 분위기다.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어 “거대한 적 앞에 똘똘 뭉쳐있다”는 것이 한 취재원의 전언이다. 당장 넘어야 할 파도가 높을 때는 내 몫을 두고 다투는 사치를 부릴 틈이 없다.
고난을 함께 견디는 것보다, 눈부신 성공의 과실을 잡음 없이 나누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파이가 커졌을 때 전체의 크기보다 내 몫에 집중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일지 모른다. 위기를 넘긴 기업들이 마주한 진짜 시험대는 실적 자체가 아니라, 쏟아진 성과를 어떻게 공정하게 나누고 조직의 마음을 봉합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진정한 일류’는 위기를 돌파하는 능력을 넘어, ‘풍요의 역설’이 낳은 갈등까지 포용하고 조율하는 그릇의 크기에서 판가름 난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