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상품과 서비스로 평가받아야 한다. 최근 신세계그룹을 둘러싼 논란은 사업 경쟁력보다 정치적 메시지와 역사 인식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오너의 발언과 계열사의 마케팅이 반복적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면서, 신세계는 스스로 브랜드의 본질보다 정치적 이미지를 앞세우는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은 단순한 마케팅 실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과 맞물린 시점에 '탱크'라는 표현을 활용한 이벤트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둔감함, 나아가 사회적 감수성 부족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소비자에게 브랜드는 단순한 상품 판매 채널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태도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더 문제는 이번 논란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용진 회장은 과거 '멸공' 발언과 SNS 게시물로 정치·이념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에도 기업 총수의 정치적 메시지가 기업 가치와 무관한 개인 표현으로만 볼 수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총수의 발언은 개인 의견에 머물지 않는다. 시장은 이를 곧 기업 문화와 경영 철학의 일부로 해석한다.
이 지점에서 오너 리스크는 단순 이미지 훼손을 넘어 지배구조 리스크가 된다. 특정 오너의 정치적 성향이나 돌출 행동이 반복적으로 그룹 전체 브랜드와 계열사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더 이상 개인의 SNS 문제나 일회성 마케팅 사고가 아니다. 내부 검증,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ESG 관점에서도 이는 치명적이다. 많은 기업이 환경과 사회공헌에 집중하지만, 결국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것은 지배구조다. 리더 개인의 언행이 그룹 전체 리스크로 확산되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시장은 해당 기업의 리스크 관리 역량 자체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신세계처럼 유통·소비재 중심 기업은 고객 저변이 넓고 브랜드 이미지 민감도가 높다. 정치적 논란은 특정 소비층 결집보다 더 큰 반대 소비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단기 화제성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소비자 신뢰 저하, 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자본시장에서 오너 리스크는 곧 밸류에이션 하락 요인으로 작동한다.
주주 관점에서도 문제는 명확하다. 기업 경영진의 최우선 책무는 개인적 메시지 표출이 아니라 주주가치 제고다. 그러나 오너의 정치적 발언과 계열사의 부적절한 이벤트가 반복적으로 기업 이미지를 훼손한다면, 이는 사실상 불필요한 리스크 비용을 주주에게 전가하는 셈이다.
결국 신세계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다. 오너 개인의 메시지가 기업 리스크로 직결되고, 이를 차단할 내부 통제 장치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취약성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과문 한 장이 아니라, 오너 리스크를 그룹 리스크로 번지지 않게 할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기업은 정치적 존재감이 아니라 소비자 신뢰를 근간으로 성장한다. 브랜드가 오너의 정치적 메시지를 위한 확성기가 되는 순간, 가장 먼저 훼손되는 것은 소비자 신뢰이고 결국 그 비용은 기업과 주주 모두가 떠안게 된다.
총수의 표현의 자유가 존중받으려면, 그 비용을 기업과 주주가 대신 치르지 않도록 하는 책임 역시 뒤따라야 한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