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행사 전야제에서 시민들이 옛 전남도청 건물을 향해 호국영령과 5·18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1980년 5월의 광주를 세계에 알린 건 한 독일인 기자였습니다. 총성이 울리던 도시 한복판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고 위르겐 힌츠페터. 그의 기록은 오랫동안 한국 민주주의의 증언으로 남았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던 광주 현장에서 그가 펼친 활약은 2017년 개봉한 영화 '택시기사'를 통해서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46년이 흐른 2026년 5월, 광주 금남로에서 또 다른 독일인 가족을 만났습니다.
폭염에 가까운 더위였습니다. 5·18 전야제와 본행사가 열린 금남로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정치인들은 저마다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오갔고, 광장 곳곳에선 "5·18 정신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18일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본행사. 출입이 제한돼 있다보니 일부 시민들과 방문객들, 기자들은 행사장 밖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행사에 함께 했습니다. 금남로 곳곳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잠시 머물다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데, 유독 한 외국인 가족만은 달랐습니다. 독일에서 왔다는 세 사람은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딸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부모에게 계속 무언가를 설명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시민 인터뷰를 마친 뒤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 중이라는 딸 에밀리는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5·18에 대해 배웠어요"라며 "한국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데 오늘 같은 역사적인 날을 가족들과 함께 보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저를 보러 한국에 오셨는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 광주에 왔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딸의 옆에 있던 아버지 피터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곳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데 같은 독일인의 역할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독일인으로서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피터의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멈칫했습니다.
정확히 46년 전, 같은 국적의 독일인 한 명은 같은 장소에 서서 총탄과 비명이 난무하는 현장을 카메라에 분주하게 담았을 겁니다. 그렇게 시민들이 쓰러지던 거리, 진실이 차단되던 도시를 그는 필름에 담아 세상 밖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후, 또 다른 독일인 가족은 민주주의를 기념하는 축제 같은 광장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그 간극이 참 묘했습니다.
금남로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과 청년들도 가득했습니다. "금남로를 K-민주주의 성지로 만들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도 행사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에밀리는 "나중에 다시 부모님과 함께 오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문득 부모님 생각도 났습니다. 호남이 고향인 부모님은 제가 어렸던 시절 5·18 이야기를 종종 꺼내셨습니다. 당시 갓 서울로 상경했던 부모님은 광주에 남아있는 친지들의 안위를 매일 같이 걱정했다고 합니다. 실제 광주에서 만났던 한 60대 남성은 "당시 총성이 너무 무서워 장성으로 피신하려고도 했었다"며 "공포에 사로잡혀 숨어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광주는 조금 달랐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시민들은 여전히 5월을 기억했고, 젊은 세대는 그것을 축제와 추모, 민주주의의 언어로 다시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풍경을 외국인들이 함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취재를 마친 뒤 후배 기자와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이래서 직접 겪어보고 눈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나봐"
1980년 5월, 광주는 세계에 구조를 요청하던 도시였습니다. 2026년의 광주는 세계인들이 민주주의를 배우러 오는 도시로 바뀌었습니다. 그 변화의 시간을 금남로 한복판에서 독일인 가족과 함께 잠시 바라봤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