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컴퓨터가 36년 만에 사명을 한컴으로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이름만 보면 단순한 리브랜딩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래된 소프트웨어 기업이 "우리는 더 이상 문서 회사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사실 한컴은 한국 IT 산업의 상징 같은 회사입니다. PC마다 설치돼 있던 한글 프로그램은 세대 공통의 기억이기도 하죠. 공공기관과 학교, 기업까지 한컴 문서는 하나의 표준이었습니다. 그런 회사가 이제는 스스로 문서 회사를 벗어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한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근 IT 업계를 보면 생존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안정적으로 고객을 확보하면 오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는 다릅니다. 익숙한 사업만 붙잡고 있으면 순식간에 시장 중심에서 밀려납니다.
실제 기업들의 위기감은 생각보다 큽니다. 최근 통신사들은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보안 기업들은 AI 인증을 이야기합니다. 클라우드 기업은 AI 인프라 회사가 되고 있고, 플랫폼 기업들은 검색 대신 AI 에이전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업종 경계 자체가 흔들리는 중입니다.
한컴도 그 흐름 속에 있습니다. 한글과컴퓨터라는 이름은 강력한 브랜드지만 동시에 과거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문서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는 인식 안에 머물러서는 글로벌 AI 시장에서 존재감을 만들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AI 시대가 될수록 오히려 기존 고객 기반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컴은 새 고객을 찾기보다 기존 공공·기업 고객 위에 AI 기능을 얹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익숙한 서비스를 가진 기업들이 AI 전환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변화의 핵심은 새로운 걸 완전히 만드는 것보다, 기존 강점을 얼마나 빠르게 AI로 연결하느냐에 가까워 보입니다.
돌아보면 기술 산업은 늘 비슷했습니다. 피처폰 시대 강자도, PC 시대 강자도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순식간에 뒤로 밀렸습니다. 지금 AI 시장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은 'AI를 한다'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회사로 다시 정의될 것인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