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방산 생태계를 더 키워야 할 상황입니다. ‘방산 공룡’이 탄생하기에는 이르다고 봅니다.”
최근 한화그룹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풍산 탄약 사업부 등 국내 주요 방산기업 인수합병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을 두고,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른바 ‘한국판 록히드마틴’의 필요성을 내세우기에는 아직 국내 방산 생태계의 저변이 충분히 넓지 않다는 지적이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화빌딩 전경.(사진=한화그룹)
한화 측은 대형 방산기업을 중심으로 육·해·공·우주를 아우르는 ‘국가대표 방산기업’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면서 KAI 지분을 인수, 본격적인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대형화와 통합을 통해 패키지 수출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성립하려면 우선 국내 방산 시장 전체의 파이가 커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정 기업이 몸집을 키우는 것보다 먼저 중견·중소 협력사와 전문 방산기업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방산은 단일 기업의 생산력보다는, 부품·소재·체계통합·정비·후속지원까지 이어지는 복합 산업이기 때문이다.
기술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대형화를 통해 수주 협상력과 글로벌 방산 시장 내 존재감이 커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 감소가 기술 개발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한화의 도심항공교통(UAM) 사업을 사례로 들었다. 한때 UAM은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사업으로 주목받았고, 한화도 관련 투자에 나섰다. 그러나 인증 지연과 상용화 지연, 수익성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사실상 철수 수순을 밟았다. 방산 기술은 통상 10~15년 이상 장기 투자가 필요한 분야인데, 특정 기업 중심의 시장 구조가 굳어질 경우 사업성 판단에 따라 핵심 기술 투자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다.
결국 핵심은 경쟁 구도다. 미국 록히드마틴이 세계 1위 방산기업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도 보잉, 노스롭그루먼, RTX,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 유사한 체급의 경쟁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 내부에서는 기술 경쟁과 수주 경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반면 국내 방산 시장은 아직 주요 기업 수가 제한적이다. 이 상황에서 특정 기업이 육·해·공·우주를 비롯해 탄약, 항공기, 함정, 미사일 등 핵심 영역을 과도하게 흡수할 경우, 타 방산기업들의 투자·연구개발 동력이 약화되고 산업 전반의 기술 경쟁 역시 둔화될 수 있다.
경쟁이 사라진 시장은 결국 정체되기 마련이다. 지금 국내 방산업계에 필요한 것은 하나의 압도적인 기업보다, 서로 긴장감을 유지하며 기술 경쟁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다. 아직은 특정 기업의 독주보다 시장의 외연을 넓히고, 기업 간 적극적인 경쟁을 통해 전체 산업의 체급을 키워야 할 때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