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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노조
입력 : 2026-05-15 오후 2:14:43
삼성을 둘러싼 노동의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한때 삼성은 '무노조 경영'의 상징이었습니다. 노동조합 설립을 막고, 활동을 위축시키고,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단결권까지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조 와해 사건은 그 시대를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이었습니다.
 
그랬던 삼성에서 이제는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성과급 제도화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의 조합원 규모는 전체 근로자의 과반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말 그대로 격세지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국면에서 이재용 회장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과거 삼성의 노사 문제는 곧바로 '총수 책임론'으로 번졌지만, 최근에는 회사와 노조의 협상 문제로 다뤄지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이 회장이 말을 아끼는 사이, 삼성은 적어도 겉으로는 과거처럼 노조를 직접 누르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상당 부분 벗어났습니다.
 
문제는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과거에는 기업이 노조를 누르는 것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강해진 노조의 요구를 국가가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느냐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며 긴급조정권 발동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부 장관은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긴급조정도 불가피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놨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과 생산 차질에 따른 피해 우려는 현실적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은 더 신중해야 합니다. 긴급조정권은 파업권을 제한하는 무거운 수단입니다. 과거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비판받은 이유는 노동자가 단체로 말할 권리를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같은 방식으로 노동권을 억누르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과를 낸 노동자에게 성과를 나누라는 요구 자체를 탐욕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기업이 호황기에는 성과를 강조하면서도,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보상 기준은 불투명하게 운영해왔다면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어디까지'입니다. 삼성전자 노조가 과반 노조가 된 순간, 그 요구는 단순한 사내 임금협상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습니다. 삼성전자가 한국 제조업과 수출,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에 있는 만큼 협력업체와 하청 노동자, 부품·장비업체, 지역경제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노조의 요구가 성과급 확대에 집중된 반면, 협력업체나 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대한 연대 의식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과반 노조의 투쟁이 사회적 명분을 얻으려면 '우리 몫을 더 달라'는 요구를 넘어 '성과를 만든 생태계 전체에 어떤 몫이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함께 던져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본질적으로 조합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입니다. 그러나 강한 노조가 자기 조합원만을 위한 이익집단으로 머물 때, 운동의 정당성은 약해집니다. 특히 이미 높은 임금과 안정된 지위를 가진 대기업 정규직 노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약한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는 강한 노조는 사회적 지지를 잃기 쉽습니다.
 
사실 이 구도는 삼성 사측에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갈등의 전선이 '삼성 대 노조'가 아니라 '국가경제 대 노조'로 옮겨가면, 삼성은 노조를 탄압하는 기업이 아니라 파업 피해를 걱정하는 기업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직접 노조를 억누르지 않는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과급 산식이 불투명하다면 설명해야 하고, 공급망 피해를 말하려면 생산 생태계 전반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제시해야 합니다. 정부의 압박 뒤에 숨어 사태를 관망하기만 한다면, 그것 역시 책임 있는 노사관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지금 삼성전자 노조의 과제는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노조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권리를 요구하는 노조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책임을 외면하는 노조는 오래 지지받기 어렵습니다. 삼성의 무노조 시대가 끝났다면, 이제는 삼성 노조도 '강한 노조' 다음의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강한 노조는 누구를 위해 강해야 합니까.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13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조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2차 심문을 마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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