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와 2000년대 전성기를 누린 미국의 록밴드 'RATM(Rage Against The Machine)'. (사진=Niels Van Iperen, RATM Instagram)
[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미국에는 체제를 향해 노골적으로 분노를 터뜨하던 밴드가 있었습니다. 이름부터 직설적이었습니다. 'Rage Against The Machine(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RATM)'. 직역하면 '체제를 향한 분노' 혹은 '체제에 맞선 분노'입니다.
RATM은 단순한 록밴드가 아니었습니다. 힙합과 메탈을 섞은 이른바 '뉴메탈' 사운드 위에 반전·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메시지를 정면으로 올려놓았습니다. 보컬 잭 드 라 로차는 시위 현장의 연설가처럼 노래했고, 하버드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는 기타를 총처럼 휘둘렀습니다.
특히 1999년 발표된 히트곡 '게릴라 라디오(Guerilla Radio)'는 당시 미국 정치 자체를 조롱에 가깝게 비판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듬해 열리는 미국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가사는 특히나 화제를 모았죠.
"앨 고어에게 표를 줄 건가, 아니면 마약왕의 아들에게 표를 줄 건가. 둘 다 엿이나 먹어. 그냥 코드(폭격하라는 국방부의 명령)를 끊어버려(More for Gore or the son of a drug lord, None of the above fxxx it cut the cord)"
당시 앨 고어 민주당 대선후보와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를 동시에 겨냥한 가사였습니다. 가사에서 언급한 마약왕의 아들이 바로 조지 W. 부시입니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결국 거대한 시스템 안의 권력일 뿐이라는 냉소가 담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9·11 테러가 벌어졌습니다. 미국 사회는 순식간에 애국주의와 전쟁 분위기로 휩싸였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뛰어들었고, 세계 경찰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당시 RATM은 미국 사회에서 가장 불편한 밴드 중 하나가 됐습니다. 실제로 미국 방송사 클리어채널은 9·11 직후 RATM 노래 대부분을 방송 자제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음악은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시대 미국은 다시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구호는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강한 정치적 확신처럼 들립니다.
중동 전쟁 위기 속에서도 미국 정치권은 누가 더 강경한지를 경쟁하듯 말합니다. 국제 질서의 균형보다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장면이 더 자주 소비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거대한 정치 브랜드가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한때 체제를 향해 반항하던 미국 대중문화 일부가 이제는 오히려 권력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 뉴메탈 스타였던 키드 록(KID ROCK)은 이제 대표적인 트럼프 지지자로 불립니다. 최근에는 군용 아파치 헬기가 그의 집 앞을 선회하며 경례를 받는 장면까지 논란이 됐습니다. 과거 록스타들이 체제를 비웃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풍경입니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집니다. 만약 지금 RATM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다면, 트럼프 시대 미국을 향해 뭐라고 노래했을까요. 아마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공포를 동원하지 말라"거나, "국기를 흔드는 사람들이 반드시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라고 외쳤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 시대야말로 RATM 같은 밴드가 다시 등장하기 가장 적절한 시대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계 역시 분노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 분노가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겠죠. RATM은 적어도 분노의 방향만큼은 분명했습니다. 권력, 전쟁, 거대 자본, 그리고 체제 그 자체였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분노하지만, 정작 거대한 구조 자체에는 질문하지 않는 시대가 된 듯 보입니다. 그래서 20여 년 전 RATM의 외침은 지금 다시 묘하게 현실적으로 들립니다.
주류의 소음 속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목소리를 들으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