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하정우(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이 지난 3일 부산 북구 구포시장에서 나란히 우산을 쓴 채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청와대 '단기 스펙'을 쌓고 하방한 여당 후보. 인공지능(AI)과 가장 먼 유세현장에서 연달아 사달을 낸 공학자. '배우 하정우'의 인지도를 넘는 게 관건인 하정우(전 청와대 AI 미래기획수석비서관) 민주당 부산 북갑 보궐선거 예비후보 얘기다.
'대통령 후광' 하나 믿고 '선출직'에 도전한 하 후보가 대형 사고를 쳤다. 준비 안 된 초짜 후보의 민낯. 감성 프레임의 총체인 투표 행위에 대한 몰이해. 무릇 투표란 이성을 압도하는 감성의 지배 도구다. 시시비비 영역이 결코 아니라는 뜻. 민심에 대한 소구력은 일종의 '스냅 사진'과 같다. 유권자의 마음을 훔치는 것은 1초 미만의 찰나. AI의 계산능력보다 빠른 게 민심의 역린.
'악수가 악수' 된 하정우…문제는 '명쾌한 사과' 거부
"악수(握手)가 기어코 악수(惡手)가 됐다." 지난달 30일 오전 동영상 하나가 급속도로 퍼졌다. 이른바 하정우 손 털기 논란.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직서를 재가한 다음 날(29일), 하 후보는 부산 첫 일정으로 북구 구포시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하 후보는 일부 상인과 악수한 뒤 양손을 털었다. 그 장면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주민 손이 더러웠느냐"며 파상공세에 나섰다. 경쟁자인 박민식 국민의힘 후보는 "선민의식과 오만함이 무의식중에 터져 나왔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경쟁자 한동훈 무소속 후보는 민주당 현직 대변인이 방송에서 한 '대세 이상무' 발언을 언급, "북구 시민들을 무시해도 대세에 지장 없다는 것이 민주당의 생각이냐"고 꼬집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린아이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 논란까지 덮쳤다. 하 후보 손 털기 논란 이후 구원투수로 등장한 정청래 민주당 대표. 그는 지난 2일 부산으로 급파했다. 하지만 논란의 구포시장에서 또다시 사고를 쳤다. 이번엔 오빠 논란. 대상은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지난 3일 구포시장을 찾은 정 대표는 유세 도중 만난 한 어린이에게 "몇 학년이냐"고 물었다. 어린이가 "1학년이에요"라고 하자, 정 대표는 "여기 정우 오빠, 오빠 해봐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하 후보도 "오빠"라고 거들었다. 그러자 "상식 밖의 만행"(박민식 후보), "참 낯 뜨겁다"(성일종 의원), "명백한 아동학대"(박정훈 의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애초 하 후보 측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한동훈 후보가 "자기들 어린 자녀가 처음 보는 50대, 60대 남성 둘에게 둘러싸여 저런 행동 당해도 괜찮냐"고 비판하자, 전날 밤늦게 정 대표와 하 후보는 "아이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며 사과했다. 정 대표와 하 후보는 논란의 주체를 초등학교 1학생 학생으로 못 박더니, 애초 무대응 기조였던 하 후보는 정 대표 명의의 당 공보국 사과문에다가 한 문장가량만 덧붙인 채 공지문을 띄웠다.
커지는 민주당 딜레마…최악 땐 PK판 전체 '휘청'
한동훈(오른쪽) 전 국민의힘 대표와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이 지난달 29일 부산 북구 구포시장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악재다. 준비 안 된 초보가 현실정치 데뷔전에서 대형 사고를 쳤다. 선거운동이란 민심과 함께 그림을 만드는 과정일진대, 본인 스스로 판 자체를 깼다. 애초 공중전이 아닌 지상전이 가능한 후보인가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오답'을 체크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명쾌한 사과 거부. 앞서 손 털기 논란에선 "손이 저려 무의식적으로 쳤던 것 같다"며 사과 대신 궁색한 변명을 했다. '정우 오빠' 논란에서도 애초 사과 대신 무대응 기조를 고수했다.
민주당 딜레마는 두 가지. 하나는 이른바 '블랙아웃'(여론조사 공표 금지) 전 '하정우 대세론'에 대한 의문. 3자 구도인 북갑의 '승리 매직넘버'는 최소 45%. 앞서 전재수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의 2024년 총선 득표율은 52.3%. 서병수 전 국민의힘 의원 득표율은 46.7%.
특히 북갑은 부산 중에서도 고령층이 많은 지역구이다. 부산에서 '우리 재수'로 통하는 전 후보가 아닌 초짜 정치인으로는 정면 돌파가 어렵다는 뜻. 현재 판세는 대세론 없는 3파전. 지난달 27일 공표한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북갑 여론조사(24∼25일 조사·휴대전화 안심번호를 활용한 무선 자동응답 방식·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 결과, 하정우 후보(35.5%)와 한동훈 후보(28.5%)는 오차범위 내. 한 후보와 박민식 후보(26.0%)의 격차는 불과 2.5%포인트.
같은 여론조사에서 전재수 후보의 부산시장 지지율은 50.1%로 조사됐다. 이론적으로 '전재수 지지·하정우 비토' 갭은 14.6%포인트. 투표율이 높은 70대 이상에선 한 후보 34.8%, 하 후보 28.7%, 박 후보 27.0% 순. 보수층에선 박 후보가 42.2로 1위.
다른 여론조사도 마찬가지. '한국리서치'가 <KBS 부산> 의뢰로 지난달 27∼28일 이틀간 북갑 거주 500명을 대상으로 한 3자 구도 조사에선 하 후보 30%, 박 후보 25%, 한 후보 24%로 3자가 오차범위 내에 묶였다. 이 조사에서 '전재수 지지(48%)·하정우 비토' 갭은 18%포인트. 70대 이상 지지율 역시 한 후보 33%, 박 후보 28%, 하 후보 18%. 보수층에선 박 후보가 46%로 1위. 지난달 30일 공표한 '한국리서치'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 100% 무작위를 통한 전화면접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두 번째 딜레마는 '하정우 대세론' 실패 시 뒤따라올 '악순환의 도돌이표'다. 하 후보의 낙향으로 북갑은 재·보궐선거를 넘어 지방선거 부산·울산·경남(PK) 판을 흔들 트리거로 부상했다. 이곳에서 패배가 유력할 경우 정청래호는 PK에 묶인다. 최근 정 대표가 2박3일 간 '영남 강행군'을 펼친 이유. 하지만 정 대표가 영남 지원사격을 할수록 PK 표심은 떨어진다. 이른바 지난 총선 때 입증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데자뷔.
영남권에서 결집한 '샤이(은폐형 부동층) 보수'가 북상할 경우 수도권 판세도 요동. '하정우 조기 대세론 실패→영남에 발 묶인 정청래→PK 격차 축소→샤이 보수 북상→수도권 판세 요동→전체 판세 시계제로' 등의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누군가는 하 후보를 '여당발 히든카드'라고 했다. 하지만 히든카드에 비전도 전략도 시대정신도 없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졸작'이다. 이제는 스스로 존재가치를 증명할 시간. 국민은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민심은 AI보다 빠르다. 제아무리 입력값을 바꿔도 결코 풀지 못하는 고차방정식. 선거는 특히 더 그렇다.
최신형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