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피셜(자의적 해석)’이긴 하지만, 트럼프가 보잉을 밀어주기 위해 조건을 손본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함께 미 해군 차세대 고등훈련기(UJTS) 사업에 도전했던 록히드마틴이 입찰을 포기하자, 한 군사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잉을 밀어주기 위해 수주 조건을 변경한 탓이라는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개발한 T-50 고등훈련기.(사진=KAI)
실제로 록히드마틴은 최근 미 해군에 UJTS 사업 불참을 공식 통보했다. 이에 따라 KAI의 T-50 계열 훈련기를 기반으로 한 TF-50N의 미국 해군 진입 시도도 사실상 멈춰 섰다. 당초 경쟁 구도는 KAI-록히드마틴의 TF-50N, 보잉-사브(스웨덴 방산기업)의 T-7 계열, 텍스트론-레오나르도(이탈리아 방산기업) M-346N 등이 맞붙는 구도였다. 그러나 록히드마틴이 빠지면서 경쟁은 보잉, 텍스트론 양자 중심으로 재편됐다.
KAI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수주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평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보잉이 최근 재정난에 시달리면서 T-7A 사업 지연 등으로 신뢰도에 타격을 입은 데다, 미 공군 훈련기 납품 일정도 당초 계획보다 늦어진 상황이었다. 반면 KAI의 T-50 계열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운용되며 안정성과 신뢰성을 검증받은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경쟁력이 부각됐다.
KAI가 이번 사업을 따냈다면 영화 ‘탑건’의 본진 격인 미 해군 훈련기 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상징적 성과가 될 수 있었다. 단순 수출을 넘어 세계 최대 방산시장인 미국에서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향후 북미·나토권 훈련기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했다.
문제는 미 해군의 요구 조건이었다. 지난달 미 해군은 UJTS 사업과 관련해 미국산 부품 비율을 75% 이상으로 맞추도록 조건을 조정했다. 여기에 항공모함 이착륙 훈련 관련 요구도까지 조정하면서, 보잉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됐다는 평가다.
KAI-록히드마틴 조합은 기본 플랫폼이 한국산 T-50 계열인 만큼 높은 현지 생산 비중을 맞추는 데 구조적 한계가 있다. 반면 보잉은 이미 미국 내 생산 기반과 정치적 명분을 동시에 갖고 있다. 트럼프식 ‘바이 아메리칸’ 기조와 맞물렸다는 평가다.
항공모함 이착륙 훈련 요구도 변화도 변수로 꼽힌다. 당초 해군 훈련기는 항공모함 착함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강건한 기체 구조가 중요하게 평가됐다. 이 점에서 오랜 운용 경험과 높은 신뢰성을 갖춘 TF-50N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미 해군이 관련 훈련 요구도를 낮추면서, 오히려 튼튼한 기체 구조가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보잉 선호는 과거에도 반복됐다. 그는 트럼프 1기 때도 꾸준히 보잉 공장을 찾아 제조업과 일자리를 강조했고, 보잉 항공기 수출 계약을 정상외교 성과로 포장해왔다. 보잉은 항공기, 방산, 대통령 전용기까지 걸친 미 제조업의 상징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만들고, 해외에 팔고, 일자리를 만든다”는 메시지를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카드다.
이번 KAI의 수주 실패도 이 같은 요인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예상된다. 훈련기 하나 팔기도 쉽지 않은데, 미 방산시장은 대통령 취향까지 계산해야 한다. 방산이 참 어려운 이유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