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뉴스토마토프라임] 우리는 무엇을 가두고 있나
만물의 영장 오만, 그 틈을 비집고 나간 늑대
입력 : 2026-04-29 오후 4:27:40
[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늑대 ‘늑구’가 울타리를 탈출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맹수가 도심 근처로 탈출했다는 공포는 오래 머물지 않았고 곧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간절한 정서였습니다. 우리는 늑대를 위험의 상징이 아닌 책임져야 할 보호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겁니다.
 
이 현상은 우리가 야생동물과 맺고 있는 관계, 그리고 그 관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구조가 얼마나 복잡해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동물원의 존재 방식에 거대한 물음표를 방증하기도 합니다.
 
16세기 프랑스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는 그의 저서 <수상록>을 통해 인간 중심주의의 오만을 꾸짖은 바 있습니다. 인간이 이성을 가졌다고 자만하지만, 정작 그 이성 때문에 불안과 고통 속에 살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이관종 대전 오월드 원장이 지난 17일 대전 중구 사정동 오월드 정문에서 늑구 포획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면 자연에 순응하며 지혜롭게 살아가는 동물을 보며 “우리가 동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동물이 지능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일갈했습니다. 인간이 동물을 열등하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오직 인간의 ‘허영심’과 ‘오만’이라 격하하며 동물들은 자연에 순응, 지혜롭게 살아간다는 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의 ‘허영심’과 ‘오만’은 여전했고 동물원의 현실은 몽테뉴의 통찰과는 정반대의 선상에 서 있습니다. 동물원의 동물은 철저히 전시되고, 관리되며, 통제됩니다. 
 
통제는 물리적 장치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20세기 후반 영향을 미친 프랑스 사회 이론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간파했듯 권력은 단순히 억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교한 ‘질서’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동물원은 그 권력의 질서가 가장 선명하게 구현된 공간이기도 합니다. 동물의 이동 경로, 먹이 먹는 시간, 심지어 번식의 방식까지 모두 인간의 설계도 안에 놓여 있기 때문이죠.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1월22일 광주 북구 우치동물원을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허나 그 질서는 안정적일까요. 늑구의 탈출은 그 질서가 완전하지 않음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울타리는 존재했지만 충분하지 않았고 관리 체계는 있었지만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동물을 가두고 그 가둠의 조건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겁니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사회계약론> 첫 문장을 통해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주창했습니다. 이 문장은 원래 인간을 향한 것이지만 오늘날 '전시 동물'들에게 가장 뼈아프게 적용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푸코의 관점에서 본다면, 동물원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의 생태적 질서를 철저히 파괴하고 인위적인 '감금의 질서'를 부여한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허가제' 도입 속도와 안전관리 체계, 동물복지 기준 등 환경이 열악한 동물원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해 11월11일 경기 과천시 서울동물원 맹수사 호랑이 방사장에 관람객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늑구의 귀환 이후 변화를 위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준 미달 시설의 정비, 체험 프로그램의 제한, 전문 인력 확충, 그리고 공영동물원의 보호시설 전환과 같은 방향이 제시되고 있죠.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동물원을 어떤 공간으로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전시의 공간인가, 보호의 공간인가, 소비의 대상인가, 공존의 대상인가.
 
우리는 동물을 ‘보고 싶은 존재’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살아야 할 존재’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죠. 늑구가 탈출했던 철창은 그 자리에 있고 그 안에는 여전히 수많은 동물이 있습니다. 
 
바뀌어야 할 것은 동물을 가둔 울타리의 높이가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된 인식의 경계일지 모릅니다.
 
 
지난해 8월8일 서울 광진구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인 유라시아수달이 사육사 손에 놓여있다. (사진=서울시설공단)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이규하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