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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번째 아이
입력 : 2026-04-29 오전 9:36:26
[뉴스토마토 김양균 기자] 2014년 4월 전남 진도 팽목항에 위치한 가족대책본부. 그 옆에 세워져있는 화이트보드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한 쌍의 중년 남녀는 종이를 손으로 짚으며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맞는 것 같아. 그치?”
 
“그래, 맞는 것 같아.”
 
“가보자.”
 
사내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자리를 떴습니다. 이들이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243번째 수습된 희생자’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5분 후 단발머리의 소녀가 황급히 달려왔습니다. 스마트폰을 든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검은색 바탕에 흰색 줄이 간 트레이닝복 바지에 밤색 티셔츠, 아디다스 슬리퍼를 차림이었습니다. 소녀가 신은 양말색은 알록달록한데, 보드에 붙어있는 종이를 읽는 소녀의 얼굴은  이내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혜영아, 혜영아, 혜영이 맞아. 이 안경. 혜영이가 맞아!”
 
소녀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여동생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앞서 종이를 확인한 남자가 소녀를 일으켰습니다. 
 
“그래도 확인해봐야 아는 거잖아. 가보자. 응?” 
 
소녀는 남자에게 안기다시피 기대 신원확인소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자칫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또 다른 실종자 가족도 나서 소녀를 부축했습니다.
(사진=서해지방해양경찰청)
243번째 실종자는 3층 주방의 식당에서 발견됐습니다. 실종자는 하얀색 반팔 티셔츠에 아디다스 반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165cm의 키에 단발머리 아이와 함께 발견된 소지품은 휴대전화와 이어폰, 안경, 립스틱이었습니다. 희생자는 또래 친국들처럼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었을 겁니다. 수학여행을 간다며 집을 나선 아이는 19일후 주검이 되어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이 아이는 과연 소녀의 동생이었을까요? 소녀가 자리를 떠나자, 모여 있던 실종자 가족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습니다. 
 
“왔구나, 드디어. 진짜 혜영이 엄마가 그렇게 찾았는데. 엄마가 그렇게 울었는데.” 
 
누구는 울고, 또 다른 사람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들은 흙빛이 된 얼굴에 눈물만 줄줄 흘렀습니다. 시신이라도 찾으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시신도 찾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화이트보드 앞에는 또 다른 소녀가 서서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실종된 남동생의 사진을 목에 걸고 있었습니다. 사진속 아이는 웃고 있었습니다. 
 
30분 후 신원확인소 앞을 걷고 있는 밤색 셔츠의 소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퍽 기운을 차린 모습이었습니다. 소녀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중이었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243번째 아이는 소녀의 동생이 아니었을까요? 배회하던 소녀는 다시 신원확인소로 발길을 돌렸습다. 소녀와는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저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감정이 이 상황에 맞긴 한 건지 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진도실내체육관 2층에서 취재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체육관의 대형 전광판에서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소녀였습니다. 
 
“희생자의 언니가 오열하자, 주변은 울음바다로 변했습니다.”
 
기자가 된 이후 여러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거친 사막, 참담한 분쟁의 현장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날 보았던 소녀의 모습을 아마 저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압도하는 상실의 충격으로 몸부림치던 소녀의 모습은 이후 제가 정신건강 분야를 취재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떠나간 이들과 남겨진 자의 고통을 위로하며. 
 
김양균 기자 kyun@etomato.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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