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한 ‘더 드루(The Drew) 라스베이거스’ 리조트 개발 사업은 국내 금융권에 3000억원대 전액 손실이라는 뼈아픈 상흔을 남겼습니다. 최근 이와 관련한 주관사 및 판매사 대상 손해배상 소송 결과가 잇따라 나오며 자본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대다수 기관투자자가 패소의 고배를 마신 반면, 현대차 정몽구 재단만이 이례적인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는 사실입니다.
증권사가 승소한 판결의 법원 논리는 명확했습니다. 원고들은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로서 투자 위험을 스스로 식별하고 검토할 능력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전문투자자라면 투자설명서(IM)에 명시된 ‘원금 손실 가능성’을 토대로 현지 법적 리스크까지 충분히 인지했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반면,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소송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법원은 현대차증권이 재단에 손실액의 60%인 약 9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같은 프로젝트, 같은 전손 사태임에도 왜 정몽구 재단만 다른 결과를 얻었을까요?
재단은 비영리 공익법인으로서 이번 소송에서 ‘일반투자자’의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전문기관들과 달리 리스크 이해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된 것입니다.
재단은 현대차증권과 투자일임 계약을 맺고 자산 운용을 맡겼습니다. 법원은 일임업자가 단순 중개인을 넘어 자산을 관리하는 ‘관리자’로서 훨씬 무거운 투자자 보호 의무를 진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상반된 판결들은 국내 기관투자자들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전문가 타이틀은 권력인 동시에 독입니다. 법원은 이제 기관투자자들에게 "몰랐다"거나 "설명이 부족했다"는 변명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자체적인 실사(Due Diligence) 역량이 없는 기관은 앞으로 이러한 대형 대체투자판에서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반면, 판매사의 설명 의무는 투자자의 눈높이에 맞춰져야 합니다. 정몽구 재단 사례는 아무리 복잡한 해외 구조화 상품이라도 투자자의 지위가 '일반'이라면, 그 위험성을 직관적으로 이해시킬 책임이 판매사에게 있음을 재확인했습니다.
라스베이거스의 도박판에서는 카지노 운영자도 호구가 될 수 있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금융이라는 고도의 정보 전쟁터에서 오직 ‘믿음’에 의지한 채 전권을 위임한 결과가 어떠한지, 이번 엇갈린 판결들이 자본시장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 사진=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