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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보다 앞서는 로봇의 시대
입력 : 2026-04-20 오전 11:27:14
지난 주말 마라톤을 뛰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웠고, 몸은 금세 지쳤습니다. 새삼 사람이 몸으로 무언가를 해낸다는 일이 얼마나 많은 조건과 한계를 안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체력, 호흡, 집중력, 순간순간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결국 인간은 자기 몸의 조건 안에서 '버티며' 나아가는 것 같더라고요.
 
19일 중국 베이징시 이좡에서 개최된 '제2회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아너의 '샨뎬'이 출발해 빠르게 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같은 날 중국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마라톤이 열렸습니다. 이 대회에서 중국 업체 아너가 개발한 로봇은 21km를 50분 26초에 완주했다고 합니다. 인간 하프마라톤 세계기록보다 빠른 기록입니다. 물론 인간 선수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별도 코스가 운영됐고, 일부는 원격 조종 지원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마라톤을 마친 후 본 이 기사는 묘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그간 기계의 발전을 말할 때 말하는 건 늘 계산이나 반복 작업 같은 영역이었습니다. 숫자를 더 빨리 처리하고, 많은 데이터를 더 정확하게 분석하고, 정해진 업무를 더 오래 수행하는 일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기계는 단지 정해진 일을 빠르게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이 오랜 시간 축적해온 경험과 판단의 영역까지 밀고 들어오는 모양새입니다.
 
최근 보안 업계에서 화제가 된 앤트로픽의 '미토스'가 그렇습니다. 이 모델은 사람이 오랫동안 찾아내지 못했던 보안 취약점을 스스로 발견하고, 검증하고, 공략 경로까지 짜는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수십 년간 드러나지 않았던 운영체제 취약점까지 찾아냈다는 설명이 나오면서 전 세계 업계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숙련된 전문가의 직관과 경험이 필요한 일로 여겨졌던 영역에, 이제는 AI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고 있는 셈입니다.
 
로봇이 인간의 몸이 겪는 피로와 한계를 비껴가며 달리고 있고, AI가 인간의 오랜 숙련을 압축해버리듯 판단과 분석의 영역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몸의 영역과 머리의 영역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변화는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습니다.
 
인간보다 빠르고, 더 정확하고, 지치지 않는 기계는 영화 속에서나 보던 존재였습니다. 그때는 늘 배경이 미래였는데 지금의 현실은 영화보다 더 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뜨거운 날씨 속 마라톤 코스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보안 시스템 안에서도, 기계는 이미 인간보다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기계가 더 빨리 달리고, 더 빨리 찾고, 더 빨리 판단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역할은 어쩌면 속도 경쟁 그 자체보다 방향을 정하는 일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고민은 인간은 어디까지 기계를 맡길 것인지. 그리고 인간이 끝까지 책임져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아닐까요.
전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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