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 매각설’. 1년 전만 해도 삼성 파운드리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따라붙던 수식어였다. 분기마다 조 단위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삼성전자 실적의 발목을 잡자, 아예 사업을 떼어내야 한다는 지적까지 제기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6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기술 콘퍼런스 ‘GTC 2026’에 참석해 HBM4E를 공개했다. (사진=삼성전자)
당시를 돌이켜보면 삼성전자 DS부문은 총체적 위기 국면이었다. 시스템LSI사업부가 개발한 엑시노스는 자사 스마트폰인 갤럭시S25에도 탑재되지 못했고, 고대역폭메모리(HBM)는 개발 난항으로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1년 만에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됐다.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반등의 중심에는 DS부문이 있다. 차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 핵심 부품인 HBM4는 업계 최초 양산·출하에 성공하며 기술력을 입증했고, 엑시노스 역시 갤럭시 시리즈 내 탑재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파운드리 사업은 테슬라와 애플에 이어 엔비디아까지 고객사로 확보하며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다.
주목할 대목은 변화의 속도다. 이번 반등은 삼성전자의 뼈를 깎는 체질 개선 노력의 결과지만, AI 확산에 따른 빅테크 기업들의 수요 확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고객이 삼성전자를 선택했기에 반등도 가능했다는 의미다. 이러나저러나, AI 시대의 주도권은 소수 공룡들에 의해 좌우된다.
반도체 시장이 호황 국면임에도 ‘전쟁터’라고 불리는 이유다. 소수 핵심 고객과의 거래 성사 여부가 곧 경쟁력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당장 삼성전자 역시 범용 D램 시장에서 여전히 강자임에도 불구하고, HBM 경쟁에서 밀렸다는 이유만으로 시장 평가가 급격히 흔들린 바 있다.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달리 말하면, 잠시라도 뒤처질 경우 언제든 다시 꺾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메모리 공급망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소수 기업에 의해 좌우되지만, 경쟁 구도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실제로 마이크론은 미국과 대만, 일본 등지에서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역시 범용 D램 점유율을 높이는 동시에 HBM 기술 추격에 나서며 격차를 좁히는 모습이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필요하지만, 이번 HBM4의 사례처럼 관건은 삼성전자 스스로의 기술 경쟁력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누차 강조한 ‘본원적 경쟁력’ 회복 역시 같은 맥락이다. ‘슈퍼 사이클’도 결국은 사이클이다. 사이클이 한 바퀴 돌아도 삼성전자의 위상이 지금과 같을 수 있을까. 결국 답은 초격차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