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웨스트민스터의 로열코트 오브 저스티스 건물에 뱅크시의 새 벽화가 그려져 있다. 작품에는 판사가 판결봉으로 시위자를 내리치는 모습.(사진=AP.뉴시스)
알려진 정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도 없던 거리의 미술가이자 그라피티 라이터 이른바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불리는 뱅크시의 정체가 탄로 났습니다. 뱅크시는 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전쟁, 난민, 국가권력 등 문제에 직면한 세계 곳곳을 다니며 벽화를 선보여왔습니다. 첫 등장은 약 25년 전으로 그동안 실제 이름 등은 베일에 싸여 있었습니다.
<로이터>는 뱅크시가 1973년생으로 51세 남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름은 로빈 거닝엄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는 지난 2008년 신원이 밝혀질 것을 우려해 영국에서 흔한 이름 중 하나인 '데이비드 존스'로 개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뱅크시의 정체를 알 수 있었던 계기는 우크라이나 호렌카 마을에 있는 그라피티 때문입니다. 해당 그림은 노인이 욕조에 앉아 목욕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당시 뱅크시의 작업을 목격한 사람은 "마스크를 쓴 남성 2명이 그림을 그렸고, 한 명은 한쪽 팔이 없었고, 두 다리가 의족인 사람"이라고 전했습니다. <로이터>는 해당 장소에서 작업한 남성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자일스 둘리를 지목했습니다. 매체는 곧바로 둘리 작가와 뱅크시의 입국 추적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둘리를 비롯해 매시브어택의 프런트맨 로버트 델 나자와 데이비드 존스라는 인물이 지난 2022년 10월28일 폴란드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로 넘어간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이밖에 <로이터>는 2000년 미국 뉴욕에서 옥상 광고판을 훼손해 체포된 거닝엄의 기록도 확인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뱅크시의 회사 페스트 컨트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반론했습니다.
뱅크시의 정체가 밝혀진 게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뱅크시는 뱅크시로 남겨뒀으면 좋겠습니다. 익명을 통해 각종 메시지를 발산하며 예술로 권력에 맞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익명은 때로 이름보다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체를 숨긴 채 거리의 벽에 메시지를 남겨온 뱅크시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지금까지 하나의 상징이 해체되는 순간처럼 느껴집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