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반세기 동안 미국 외교정책은 다른 모든 지역보다 중동을 최우선으로 삼아왔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중동은 수십 년간 세계 최대의 에너지 공급처였으며 초강대국 경쟁의 주요 무대였고, 전 세계로 확산될 위험이 있는 충돌이 만연했으며 심지어 우리 해안까지 위협했다. 오늘날, 적어도 그중 두 가지 역학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중동이 장기적 계획과 일상적 실행 모두에서 미국 외교정책을 지배하던 시대는 다행히 끝났다. 중동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과거처럼 지속적인 골칫거리이자 임박한 재앙의 잠재적 원천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동은 협력과 우정, 투자의 장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환영하고 장려해야 할 추세다."
지난해 12월5일 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은 중동 정세를 이렇게 개괄했다. 같은 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해서 중동 정세를 긍정적으로 바꿨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지난 7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시민들이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석유 저장 시설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뉴시스)
불과 석 달 전 백악관 NSS "중동, 과거처럼 골칫거리 아냐"
NSS 인사말에서 트럼프는 "(2025년 6월) '미드나이트 해머 작전'을 통해 우리는 이란의 핵농축 능력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자랑한 뒤 "(취임 이후) 불과 8개월 만에 격렬한 충돌 8건을 해결했다"면서 그 해결의 한 사례로 '이스라엘과 이란'을 언급했다.
보통 각 행정부마다 1회 정도 발표하는 NSS는 해당 시기 미국의 안보 목표와 우선순위, 전략의 방향성을 천명하는 '대통령의 국가 전략 최고 문서'다. 2025년 NSS에서 트럼프정부는 "미국의 안보와 반영이 가능하려면 서반구에서 미국의 확실한 우위가 선결 조건"이라고 했고, 지역 전략을 설명하는 순서에서도 서반구를 맨 앞에 놓으면서 '트럼프판 먼로 독트린'(The Trump Corollary to the Monroe Doctrine)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그다음이 중국 견제였다. NSS 기조에 따라 작성하는 국방부의 '국가방위전략'(NDS)도 마찬가지였다. 서반구와 인도·태평양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두고 자원을 집중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석 달도 안 된 지난달 28일, 트럼프정부는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전면 공격했다.
그동안 이란을 둘러싼 중동 정세가 더 악화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오만의 중재로 제네바에서 이란과 핵 협상을 하던 터였고, 그다음 주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후속 회담을 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오만 외무장관이 "회담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한 것을 보면, 제네바 핵 협상 내용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트럼프는 국가 차원의 전략이나 국가 간 협상 따위는 별 의미가 없고 그 자신의 임의적, 즉흥적 판단이 결정적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트럼프정부는 베네수엘라를 기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했고, 핵 협상 와중에 이란을 공습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살해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핵 사용 협박도 주저하지 않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게는 먼저 전화를 걸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푸틴은 트럼프에게 '이란 전쟁 종전안'을 제안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였다. 국제정치의 본질이 윤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강대국 간 게임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장면이다.
미국의 참수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지만, 이란은 물론이고 북한 그리고 핵 보유 의지를 가진 국가들에 '핵무기만이 살길'이라는 확신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핵 비확산'을 기초로 한 미국의 대외 전략이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미국이 마두로를 압송해 간 다음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전쟁 억제력 고도화'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최근의 지정학적 위기와 다단한 국제적 사변들이 설명해 주고 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전쟁 명분도, 목표도 불명확…국민 지지도 '역대 최저권'
이란 전쟁이 그 명분은 물론이고 전략 목표도 불명확한 것은 극히 당연하다. 트럼프는 지난달 28일 이란 공습을 처음 알리는 자리에서 이란이 "임박한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고 했다. 트럼프의 '임박한 위협' 주장과 달리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미 의회에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계획이었고 이렇게 되면 이란이 미국에도 보복할 것이기 때문에 이란을 선제공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쟁 목표는 더 혼란스럽다. 트럼프는 이란 공습 당일 "우리가 (공격을) 끝내면 당신들의 정부를 접수하라"고 촉구했다. '레짐 체인지'(체제 교체)가 목표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어 6일에는 "훌륭한 지도부가 들어선다면 미국과 동맹 파트너들이 이란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해, 정권교체는 물론 전후 재건까지 시사했다.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가 차기 최고지도자로 거론되는 상황에서는 "용납할 수 없다"며, 자신이 후계 구도에 개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피트 헤그세스 국방 장관은 "정권교체를 위한 전쟁이 아니고, 끝없는 전쟁도 아니"라면서 이란의 핵과 미사일 능력 제거만을 거론했다. 루비오 국무장관도 처음부터 정권교체에는 선을 그었다.
급기야 트럼프는 대이란 작전을 끝내고 협상에 나서는 조건으로 '무조건 항복'을 내걸기도 했으나 백악관은 지난 10일 대이란 군사작전 종료 시점을 "작전 목표가 완전히 달성됐다고 대통령이 판단할 때"라고 오락가락하면서, 이란 전쟁에 대한 출구를 열어놓는 모습을 보였다.
이란 전쟁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지지도도 극히 낮다. 왜 이 전쟁을 하는 것인지, 이 전쟁으로 미국이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일, 이란 전쟁에 대한 미 국민들의 지지도가 미국의 다른 대외 군사개입 사례에 대한 초기 지지율과 비교해 훨씬 낮다고 보도했다. 태평양전쟁이 97%, 한국전쟁이 75%, 아프간전쟁이 92%라는 높은 지지를 받았고, 대량살상무기 입증에 실패해 비판 여론이 극심했던 이라크전쟁도 76% 지지를 받았던 비해, 이번 이란 전쟁에 대한 지지도는 낮게는 27% 수준이고 보수 성향이 강한 폭스뉴스 조사도 5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