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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은 눈치게임이 아니다
입력 : 2026-03-11 오후 9:11:54
9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오늘 넣었으면 50원 더 쌌는데, 괜히 미리 넣었어.”
 
지난 저녁, 퇴근을 하고 온 남편의 말이다. 그는 마치 눈치게임에 실패한 사람처럼 푸념했다. 실제 요즘 기름 값을 보면 ‘시장’이 아니라 ‘심리’가 가격을 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주 중동에서 포성이 울렸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이튿날 아침 동네 주유소 간판 숫자가 먼저 들썩였다. 전쟁 전 들어온 기름으로 만든 휘발유를 넣으면서도, 소비자는 전쟁이 몰고 올 미래 유가를 지불한 셈이다.
 
기름 값이 심리 게임이 되는 건 구조 때문이다. ‘기름 한 방을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정유사와 주유소는 ‘대체 원가’ 논리를 말한다. 탱크에 저장된 재고는 과거 가격이지만, 앞으로 들여올 원유와 제품은 훨씬 비싸지기 때문에 이를 선반영해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 교과서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위 논리는 한 방향으로만 작동한다. 오를 때는 ‘앞으로 비싸질 기름’을 근거로 가격을 올리고, 내릴 때는 ‘이미 비싸게 사둔 재고’를 근거로 가격 인하를 미루기 때문이다.
 
비대칭적 가격 결정 구조가 반복되다 보니, 국민들이 느끼는 불신은 이제 임계점을 넘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약 30년 만에 ‘가격 상한제’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게 된 배경에도 시장 자율에만 맡겨두기엔 기름값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점이 한 몫했다.
 
정유사와 주유소의 담합이나 가격 조작이 있다면 강력히 처벌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여론에 떠밀리듯 꺼내드는 처방이 ‘가격상한제’ 같은 강수로 향하는 것에 대해선 우려가 든다.
 
가격상한제는 단기적으로는 일정 선 위로 치솟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시장 왜곡이나 재정 투입에 대한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어서다. 특히 마진이 적은 자영 주유소는 기름 값이 오르는 구조에서 버티기 어려워 폐업을 할 수 있고 반대로 기름 값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지 않는 대신, 아예 기름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공급 쇼크’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를 감안하면 유가 리스크는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주유소와 정유사 중 누가 가격을 늦게 내렸는지, 혹은 올렸는지 ‘책임공방’을 벌일 때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금 구조부터 유통 구조의 투명성을 가져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가격 경쟁에서 소외된 영세 주유소들이 고유가 파고를 넘을 수 있도록 하는 지원책도 병행돼야 한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백아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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