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언제나 가장 무거운 책임을 가장 힘없는 곳으로 떠넘겨 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뻔한 영웅주의나 왕실 중심의 거창한 정치 놀음에서 벗어나, 서늘한 권력의 생리를 산골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서 직시한다. 수양대군이 폐위된 어린 조카를 첩첩산중 영월로 유배 보낸 것은 결코 자비가 아니었다. 단종을 곁에 두자니 구심점이 될까 두렵고, 직접 죽이자니 도덕적 명분이 부족했을 터. 극 중 한명회가 금성대군을 이용해 단종에게 역모의 덫을 놓는 치밀한 계략만 보아도 속내를 알 수 있다. 결국 단종의 유배는 정치적 부담과 도덕적 비난을 피하고자 ‘감당하기 힘든 짐’을 변방의 소시민들에게 던져버린 비겁한 ‘폭탄 돌리기’였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보수주인 엄흥도가 쌀밥과 찬이 차려진 상을 단종 앞에 내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지점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당대 유배 제도의 잔혹한 실체인 ‘보수주인’ 제도다. 모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현대의 형벌 제도와 달리, 조선의 유배는 국가가 죄수를 특정 지역에 격리할 뿐 생계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지 않았다. 대신 유배객이 머무는 민가의 주인을 보수주인으로 지정해 숙식 제공은 물론 감시의 책임까지 모조리 떠넘겼다. 이는 유배 형벌의 운영을 민간에 떠넘긴 일종의 ‘민간 위탁 감시 시스템’이자,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행정적 책임을 힘없는 개인에게 ‘하청’ 준 것과 다름없다.
주인공 엄흥도는 이 거대한 하청 구조의 맨 밑바닥에서 생존을 담보로 노동하는 ‘하청 노동자’의 초상이다. 그는 당초 재력 있는 유배객 배정을 마을의 경제적 호재나 이권 사업쯤으로 여기며 어떻게든 자기네 마을에 유치하려 애쓴다. 하지만 복귀 가능성이 없는 폐위된 왕을 떠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가 기대했던 ‘수익’은 오직 감내해야 할 ‘치명적 위기’이자 감당하기 버거운 부채로 돌변한다. 옥체에 흠집이라도 나면 마을 전체가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일상을 저당 잡힌 채 왕의 목숨값과 밥값을 온전히 감당해낸다. 평생 배불리 먹어보지도 못한 귀한 ‘쌀밥’을 기꺼이 내어주는 장면은, 유배객의 생계비라는 ‘경제적 비용’과 감시 소홀에 따른 처벌이라는 ‘정치적 위험’을 동시에 하청받은 노동자가 자신의 생존을 담보로 권력의 찌꺼기를 감당해야 했던 서글픈 ‘이중 착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는 현대 사회의 기형적인 하도급 구조와 절묘하게 겹쳐 보인다. 중앙 권력이 정치적 비용을 변방에 강제로 떠넘긴 비극은, 오늘날 원청이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기피 업무를 하청 업체에 떠넘기는 현실의 거울이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중대재해의 원인으로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위험의 외주화를 지목하고, 원청의 안전 비용이 전가되지 않도록 전방위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는 것도 이러한 병폐를 끊어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권력의 변두리에서 위험과 밥값을 모두 하청받은 영화 속 촌민들의 모습은,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현대 소시민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권력자가 피 흘리지 않기 위해, 혹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가장 힘없는 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비겁함. 그것은 600년 전의 조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가 직시하고 끊어내야 할 구조적 폭력의 실체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