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3차 상법 개정이 일으킨 주식 교환 사슬
입력 : 2026-03-03 오후 5:03:45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8차 본회의에서 3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지난달 25일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지난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세 차례에 나눠 추진된 상법 다듬기의 마지막 절차인 이번 3차 개정안 골자는 상장기업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입니다.
 
자사주 취득 후 소각까지 부여된 기간은 1년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자사주 보유 기간 중 기업의 의결권과 신주인수권은 배제됩니다.
 
기업의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는 이번 3차 상법 개정안의 취지는 주주가치 제고입니다. 기업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의결권도 없는 자사주를 보유하게 되면 전체 주식수가 늘어나 상대적으로 보유 주식 비율이 낮은 소액주주에게 불리하다는 게 상법 개정 취지입니다. 반대로 기업이 자사주를 태워버리면 전체 발행주식수가 줄어 다른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가 올라가는 셈이죠.
 
몇몇 제약바이오기업들은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 전부터 정부 기조에 보조를 맞췄습니다. 당장 다음 달 정기주주총회에 자사주 소각 관련 안건을 상정하겠다고 공시부터 하고 나섰습니다. 한 바이오기업은 관계사와의 합병 이후 주주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상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기 전부터 자사주를 대량 소각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업이, 정확히는 기업을 지배하는 가문과 백기사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3차 상법 개정 효과는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주가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크다는 건 기존 경영 관행을 버리지 못한 기업가 가문에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개정안의 사각지대를 노려 경영권 보장 수단을 확보한 곳들이 눈에 띕니다.
 
주주가치 제고보다 경영권 방어에 무게를 둔 이들이 선택한 꼼수는 지분 나눠 가지기입니다.
 
3·1절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달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살펴보면 제약기업 간 지분 취득 공시가 평소에 비해 많이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신풍제약은 지난달 27일 정정공시를 통해 현대약품 주식 약 230만주를 취득했다고 알렸습니다. 취득 목적에는 '전략적 제휴를 통한 사업 시너지 창출 및 R&D 파트너십 강화'라고 기재했습니다. 과거 GC녹십자가 일동제약 지분을 취득했을 때 적대적 M&A의 시발점이라며 온갖 비판을 들었던 선례를 생각하면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를 위한 제약사 사이의 지분 취득은 이례적입니다.
 
평상시와 다른 주식 거래는 현대약품 공시에서도 드러납니다. 신풍제약이 공정공시를 낸 당일 현대약품이 대화제약 주식 71만5000주를 취득키로 했다는 공시를 낸 겁니다. 현대약품은 대화제약 주식 취득 목적을 '전략적 제휴를 통한 지속적인 사업협력관계 구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세 회사 간 주식 거래 양상을 보면 신풍제약이 현대약품 주식을 사들이고, 현대약품은 대화제약과 주식 취득 계약을 체결한 구조입니다. 이 구조는 대화제약이 현대약품 주식 약 84만주를 사오면서 순환고리로 완성됐습니다.
 
신풍제약과 현대약품, 대화제약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겹치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영역에 집중하면서 신규 사업 분야를 발굴하는 파트너십 구축이 목표라면 일견 이해도 갑니다. 다만,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교류가 없었던 기업 간 주식 취득 거래가 갑자기 생긴 건 의미심장합니다. 보는 눈에 따라선 주주가치 제고라는 상법 개정 취지보다 잠재적 백기사 확보를 통한 경영권 방어를 우선시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세 기업의 상호 주식 취득 계약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우호 지분 공유에 해당한다면, 일본 기업을 따라한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대기업들은 서로 소량의 지분을 나눠 가지면서 지배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 당국과 주주의 간섭에서 벗어나곤 합니다.
 
재벌 위주로 성장한 한국 기업의 특성상 특정 가문이 사실상 지배하는 오너 체제를 한순간에 바꾸긴 어렵습니다. 그런 만큼 기업을 지탱하는 큰 기둥 중 하나가 주주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대를 이은 한 일가의 경영권을 지켜내기 위해 일본식 꼼수를 생각해낸 제약사들, 3·1절을 앞두고 참 기똥찬 생각을 해내셨습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
동지훈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