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시계를 찾습니다. 갤럭시나 애플 워치 아닌 아날로그 시계. 미친 듯 울리는 휴대전화 진동에 정신병이 도집니다. 담배 피우는 그 순간만큼은 인간다워지고 싶습니다. 고요히 흐르는 시간에 오롯이 집중하면서.
1995년 제작 '미쉘 에블랑' 10434 금도금 쿼츠 시계. (사진=엣시)
시계를 들여다볼수록 욕심이 커집니다. 기준은 단 한 가지, 10년이 지나도 싫증 나지 않을 것. 예민함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자신 있는 저에게, 그 기준을 충족하는 시계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습니다.
정신 차려 보니 새벽 3시. 원하는 시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계속 시계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실존 양식을 2가지로 분류합니다. 무엇을 소유하느냐로 자신을 규정하는 '소유적 실존'과 경험하고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적 실존'입니다.
<연합뉴스> 번역문조차 그대로 믿지 못해 백악관 홈페이지를 뒤지고, 미국 법령 원문까지 찾아 들어갑니다. 틀리면 안 된다는 압박 때문입니다.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끝까지 파고들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진실을 경험하고 있다는 감각보다, 확실한 팩트를 손에 쥐고 있어야 안심됩니다.
출발은 진실에 다가가고 싶다는 태도에서 시작하지만, 그 과정은 점점 확실성을 붙잡아야 하는 방식으로 굳어집니다.
시계를 찾는 일도 물건을 고르는 과정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더 이상 무엇을 놓쳤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 머물러도 되는 상태. 어쩌면 제가 갖고 싶었던 것은 시계가 아니라, 그런 시간의 감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존재적 실존과 구조적으로 충돌합니다. 의심하고 확인하며 교차 검증하고, 근거를 확보하며 틀리면 책임집니다. 결국 이 직업의 핵심은 확실성을 끝까지 붙잡는 데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