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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경영을 찾아서)비본느 강과 '메제글리즈 쪽'의 디커플링[전략]
관계의 총체성으로 쓰는 프루스트의 비즈니스 서사
입력 : 2026-02-24 오후 3:08:01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서막을 여는 콩브레는 화자의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그의 정신적 근원이자 정체성이 형성된 정서적 고향이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의 화자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믿은 두 개의 산책길을 마주한다. 하나는 스완네 집을 지나는 '메제글리즈 쪽'이고, 다른 하나는 비본느 강을 따라 걷는 '게르망트 쪽'이다. 화자에게 이 두 길은 지리적 방향이 다른 그저 산책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풍광, 나아가 서로 다른 우주를 품은 채 결코 섞일 수 없는 독립된 실체였다.
 
"그 두 '길'은 서로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우리는 밖으로 나갈 때 두 쪽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은 내게 인생의 여러 작은 사건과 결부된 채로 남아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에서)
 
비본느 강의 모델이 된 루아르 강(le Loir). (사진=위키피디아)
 
경영 전략의 관점에서 이 두 갈래 길은 기업이 직면하는 '사업 포트폴리오의 분리'와 '가치 사슬의 해체', 즉 디커플링(Decoupling)을 상징한다. 기업은 성장 과정에서 관성적으로 모든 길을 연결하려 하지만, 때로는 고객의 진정한 편익과 기업의 지속 가능한 가치를 위해 기존의 결합된 사슬을 끊어내고 자신만의 핵심적인 '산책길'을 재정의해야 하는 전략적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프루스트가 묘사한 두 길은 인간 세상의 두 가지 근본적인 태도이다. '메제글리즈 쪽'은 개인적이고 감각적인 기억의 세계다. 비가 내린 뒤의 흙내음, 만개한 라일락 향기, 이웃인 스완과 오데트로 대변되는 부르주아적 삶의 평온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은 인간의 내면적 진실과 개별적 정서가 흐르는 감정의 가치 사슬이다.
 
반면 '게르망트 쪽'은 사회적 야망과 권력의 세계다. 비본느 강을 따라 펼쳐지는 웅장한 자연과 그 너머에 군림하는 게르망트 가문의 귀족적 위계질서가 지배한다. 이곳은 사회적 관계와 명성, 거시적인 시스템이 작동하는 권력의 가치 사슬이다. 화자에게 이 두 길은 평행선이었으며,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다른 하나의 세계를 포기하는 단호한 결단을 의미했다.
 
번들링의 시대
 
과거의 비즈니스모델은 제조부터 유통, 서비스까지 하나의 거대한 사슬로 묶여 있었다. 경영학에서 '번들링(Bundling)'이라 부르는 이 방식은 기업에 높은 수익성과 고객 락인(Lock-in) 효과를 제공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 시대의 고객은 더 이상 기업이 일방적으로 정해 놓은 전체 경로를 따라 걸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구간만을 세밀하게 선택하여 걷고 싶어 하며,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길 거부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많은 기업이 마이클 포터가 경고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에 빠진다. 이런 기업을 포터는 '중간에 낀 상태(Stuck in the Middle)'라고 정의했다.
 
포터가 말한 전략이란 경쟁에서 상충 관계(Trade-off)를 만드는 것이다. 전략의 본질은 "무엇을 하지 않을지(What not to do)"를 선택하는 데 있다. 경영자는 흔히 '시너지'라는 명분 아래 메제글리즈의 안온함과 게르망트의 화려함을 동시에 취하려 한다. 저가 경쟁력을 추구하면서 고품질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호함은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고객에게 혼란을 준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기업은 결국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치 사슬의 창조적 파괴와 내부적 디커플링
 
진정한 혁신은 선택한 길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화자는 메제글리즈라는 익숙한 번들링 안에서도 자신만의 특정한 감각, 예컨대 산사나무의 빛깔이나 빗방울의 감촉만을 따로 떼어내 깊이 응시한다. 경영 관점에서는 비즈니스 모델 내에서 고객이 진정으로 가치를 느끼는 핵심 구간을 분리해 내는 '내부적 디커플링'의 과정에 해당한다. 단순히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선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익숙한 길 위에서도 불필요한 관습과 비용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세분화한 욕구를 가진 현대의 고객은 이제 전체 패키지가 아닌, 그 길 위에서 만난 특정한 향기와 감각만을 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탈레스 테이셰이라 교수는 기술이 아니라 고객으로부터 파괴적 혁신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디커플링은 인지, 탐색, 비교, 선택, 구매, 사용, 관리, 처분, 공유 등으로 구성된 전체 가치 사슬 중 기업이 특정 단계만을 분리해 장악하는 전략이다. 단 하나의 단계에만 집중하더라도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콘텐츠 제작과 편성, 송출의 사슬을 끊어낸 넷플릭스나, 자동차 소유와 이동의 커플링을 파괴한 우버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순간의 가치'를 포착해 기존 산업의 거대한 사슬을 해체했다.
 
넷플릭스는 전통적인 가치 사슬을 끊어낸 성공적인 기업의 대표 사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건물 위에 넷플릭스 간판이 걸려 있고, 멀리 할리우드 사인이 보인다. (사진=뉴시스)
 
수련이 떠 있는 비본느 강
 
비본느 강 쪽 산책길에서 소설의 화자는 강물 위에 떠 있는 수련을 관찰한다. 수련은 흐르는 강물에 밀려 떠내려가려다가도 뿌리에 이끌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이 모습은 변화하는 시장 흐름 속에서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단단한 뿌리와 줄기에 묶여 고통받는 기업의 초상이다. 혁신은 이 질긴 줄기를 끊어내고 새로운 물길을 타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경영의 역설은 디커플링이 무한정 '해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결을 끊어 새로운 가치를 찾아냈다면, 그 조각들을 다시 모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기회가 열린다. '리커플링(Recoupling)'이다. 최근의 토스나 카카오페이 같은 금융 슈퍼앱은 흥미로운 리커플링 사례다. 과거 송금, 증권, 보험으로 파편화한 서비스를 사용자 경험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다시 엮어냄으로써 고객에게 통합된 가치를 제공한다. 분해와 재결합을 반복하며 가치 사슬은 더욱 정교해지고 고객 친화적으로 진화한다.
 
경영자는 종종 책상 위에 놓인 완벽한 포트폴리오 지도에 취하곤 한다. 정교한 매트릭스와 도구들은 사업을 깔끔한 칸에 몰아넣지만, 그 칸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역동성이 꿈틀대지는 않을 것이다. 프루스트는 "길은 오직 걷는 자의 감각 속에서만 실재한다"고 말한다. 소설 속 화자는 나중에 이 두 산책길이 사실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 깨달음은 결코 지도를 보고 얻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 당신의 기업이 걷고 있는 길을 냉정하게 점검하라. 혹시 메제글리즈의 관습과 게르망트의 환상이 뒤섞인 전략적 모호성의 늪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유능한 전략가는 모든 길을 가려고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전략의 본질은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선택하는 용기이며, 그 선택을 통해 "무엇을 할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결국 진짜 본질은 미리 그려진 경로가 아니라 '산책'이라는 행위 자체에서 나오는 셈이다. 길은 결국 산책자에게 복속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김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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