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의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전기차 수요 둔화 장기화에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 폐지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생산 전략 전반을 손질하고 있다. 그 여파는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와 함께 설립한 북미 합작법인(JV) 정리로 이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이 미국 미시간 홀랜드 생산시설에서 공정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최근 미국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가 삼성SDI와의 합작 공장 운영권을 두고 지분 매각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앞서 이 회사는 LG에너지솔루션과 설립한 캐나다 합작사 지분 49%를 사실상 헐값에 넘겼다. SK온 역시 포드와의 JV를 정리하며 생산시설을 독립 운영 체제로 전환했다. 완성차 업체들이 비용과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합작 구조에서 잇따라 발을 뺀 것이다.
이로써 K배터리 3사는 예외 없이 ‘홀로서기’ 시험대에 올랐다. 지분 구조상 주도권을 유지하고 북미 현지 생산기지를 확보했다는 점은 성과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부담도 적지 않다. JV 체제에서는 합작 상대인 완성차 업체가 안정적인 배터리 수요처 역할을 했지만, 단독 운영 체제에서는 이 안전판이 사라진다. 수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수주에 실패할 경우 원가 부담과 공장 운영 비용을 배터리사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시장에서는 전기차 수요 둔화로 인한 공장 가동률 하락을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가 일정 부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다. 그러나 ESS 시장 역시 만만치 않다. 성장성은 분명하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이미 중국 업체들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이 북미에 짓고 있는 공장들의 가동 시점이 비슷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공급이 한꺼번에 시장에 풀릴 경우 과잉 우려를 피하기 어렵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7년까지 국내 배터리셀 3사의 미국 신규 생산설비 완공이 집중되는 가운데, 전방 수요 둔화가 지속될 경우 공급과잉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산능력 대비 낮은 가동률이 이어질 경우 비용 부담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결국 북미 공장의 성패는 가동률과 수주 확보에 달려 있다. 전기차 수요 회복이 지연될 경우, ESS 등 비(非)전기차 수요를 K배터리가 얼마나 빠르게 흡수하느냐가 실적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완성차와의 동거는 끝났고, 이제 K배터리가 단독으로 시장성과 수익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