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라는 말이 일상이 됐습니다. 본래 게임에서 쓰이던 부캐릭터는 이제 현실의 생존 전략에 가깝습니다. 평생직장 개념이 흐려지고, 한 가지 정체성만으로 오래 버티기 어려운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이름과 역할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의 직업, 하나의 얼굴로 자신을 규정하던 방식이 깨진 셈입니다.
일반인에게 부캐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낮에는 회사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스마트스토어 사장이나 유튜버, 주말에는 클래스 강사가 됩니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수입원이 되고, 부업이 본업을 밀어내는 경우도 흔하게 발생합니다. 안정성을 쪼개 여러 개의 가능성으로 분산하는 방식이죠. 잘 나가는 개인일수록 부캐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값이 됐습니다.
이런 변화의 이면에는 플랫폼 환경의 변화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조직과 자본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플랫폼을 통해 개인도 곧바로 시장과 연결됩니다. 부캐는 더 이상 숨겨야 할 '부업'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실험하고 키우는 정식 활동이 됐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본캐로 돌아갈 수 있고, 성공하면 또 다른 본캐가 됩니다. 이 유연함이 부캐를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로 만들고 있습니다.
유명인들은 이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예능인 유재석은 '유산슬' 같은 부캐로 음악 활동까지 영역을 넓혔고, 배우와 가수들도 본업 외에 유튜브·사업·제작자로 활동 반경을 확장합니다. 한 명의 스타가 여러 얼굴을 갖는 시대입니다. 대중 역시 이를 정체성의 혼란이 아니라 능력치 확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개인을 넘어 사업자에게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미디어·콘텐츠 기업들은 광고와 가입자 성장 둔화 속에서 렌털, 커머스, 음악 같은 부캐 사업을 키우고 있습니다. 본업만으로는 성장이 막히자, 기존 가입자와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해 다른 수익원을 붙이는 전략입니다. 사람처럼 기업도 이제 하나의 정체성에 올인하지 않습니다. 부캐는 도피가 아니라 적응입니다. 잘 버티는 개인과 기업의 공통점은, 이미 다음 얼굴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