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정근 오스코텍 고문. (사진=오스코텍)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오스코텍 창업주이자 최대주주인 김정근 고문이 지난 4일 별세했다. 향년 66세.
고인은 생전 주주의 거센 반대에 가로막혀 오스코텍 대표 연임에 실패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그래서 그가 숨진 곳도 미국.
주주들 고인의 대표이사 재선임과 자회사 상장이 맞물려 이익이 창업주 일가에 쏠린다는 이유로 회사 결정에 맞섰다.
기업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특히 상장사라면 다른 그 누구보다 주주를 위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주주는 단순 투자자를 넘어 기업에겐 동반자이고 이해관계자이니 반론의 여지가 없다.
이사회, 경영진을 향한 주주의 감시와 비판도 당연하다. 간섭받지 않는 권력 주체의 독단적인 판단은 대개 위험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주주의 관계에 공동체를 대입하면 경영학은 인문학이라는 명제도 설득력을 얻는다. 기업이 탄생해 성장하는 동안 누리고 이용한 인적 물적 자원이 공동체의 손길을 거쳤으니, 기업은 단순히 이익 추구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개념이 담긴 것이다. ESG를 논할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경영학이 인문학에 해당한다고 가정하면 창업주의 연임이 달려 있고, 그의 아들이 자회사 지분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고인의 연임을 막은 주주들의 견제는 '기능적으로' 잘 작동했다. 실제 창업주 일가가 모기업과 자회사를 틀어쥐려는 의도를 품었는지와 별개로, 주주의 개입으로 기업의 의사결정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철을 다듬어 칼을 예리하게 벼릴 때 불순물은 어쩔 수 없다. 주주들이 스스로 옳다고 믿는 주장으로 회사 의사결정을 막는 과정에서 나온 거친 표현도 마찬가지다. 돈이 걸린 문제이니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고 해도 일견 이해가 된다.
기업과 주주, 기업과 공동체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감정이 동한다고 해도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명확하다. 경영학이 인문학의 한 부류라면 기업의 가치와 전략에 동의해 주식을 취득한 주주도 인문학의 적용을 받는 게 마땅하다.
고인이 생을 마감한 날 몇몇 주주는 오스코텍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테니 주식을 추가 매수해야 한다고 설쳤다. 경영권 다툼이 일어나면 승기를 잡으려는 쪽이 주식을 사들일 테니 자연스럽게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이다.
사람의 도를 넘었다. 타인의 죽음을 사적 이익 추구의 기회로 삼는 발상은 전쟁처럼 잔혹한 환경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금수나 할 짓으로 눈을 감아서도 대우를 받지 못한 고인에게 조의를 표한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