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 10조원대의 밀가루·설탕 가격 담합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무엇보다 밀가루와 설탕은 전 국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초 생필품으로 라면, 빵, 과자 등 서민들의 식품·음료·외식 물가 인상과 직결되는 품목들이죠. 서민들이 물가상승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뒤에서는 몇몇 기업들은 짬짬이로 수년에 걸쳐 담합을 통해 가격을 인상해 수익을 챙겼습니다.
검찰 수사 발표에 따르면, 설탕 가격 담합은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약 4년 2개월간, 밀가루 가격 담합은 2020년 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5년 9개월간 이뤄졌습니다. 제당사 3곳이 담합 규모는 3조2715억원, 제분사 7곳의 담합 규모는 무쳐 5조9913억원에 달합니다.
담합행위에 가담한 기업들은 제분사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그리고 제당사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입니다. 이들의 담합행위로 인해 설탕 가격은 담합 전 대비 66.7%까지 인상됐고, 밀가루 가격은 지난 5년간 최대 42.4%까지 인상됐죠. 그동안 밀가루, 설탕 가격 인상은 소비자물가지수 누계 상승률과 비교했을 때 두 배에 달하는 36.12%에 달합니다.
기업들이 담합으로 인한 과실을 누리고 있던 동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소비자들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빵과 라면, 음식값을 고스란히 떠안아온 것입니다. 무려 10조원에 달하는 담합에 가담한 기업들을 상대로 민생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시장 질서를 교란시킨 행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 일벌백계해야 하지만 법 테두리 안에서 제재할 수 있는 처벌은 너무도 미미합니다.
현행법 체계 아래 담합행위 범죄에 대한 법정형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2억원 이하에 불과합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낮은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이죠. 미국은 징역 10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100만달러(한화 약 14억2000만원) 이하를 부과하고 일본도 징역 5년 이하 또는 벌금 5000만엔(한화 약 5억원) 이하로 처벌 수위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습니다.
처벌 수위는 낮은데 담합을 저질러 누릴 수 있는 범죄수익은 막대하니 담합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제도)를 활용하면 담합행위를 저지른 기업이 기소 면제 또는 구형 감경돼 처벌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리니언시는 담합 같은 규제 당국의 적발이 어려운 불공정행위에 대해 기업이 자진 신고하면 과징금·제재를 감경·면제해주는 동시에 조기에 범죄행위를 적발해 담합 카르텔을 해체하려는 목적에서 도입됐죠.
담합행위가 밀실에서 비밀리에 이루지는 만큼 증거 확보와 적발이 어렵고 외부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업이 먼저 신고하면 처벌이 면제되거나 덜 받는 유인책으로 자진 신고를 유도하는 것이죠. 문제는 제도의 취지와 달리 이를 악용한다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합니다.
이번에 적발된 담합 기업들은 과거에도 비슷한 유형의 범죄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수차례 적발됐지만, 담합행위를 멈추지 않았죠. 핵심 이유는 법인에 대한 과징금 또는 벌금 처분 등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범죄에 가담한 핵심 기업이 리니언시 제도까지 활용하면 처벌 수위를 최소화 할 수 있어 손쉽게 면제부를 받을 수 있죠. 담합행위를 조기에 근절하고자 도입한 리니언시의 제도적 허점이 악용되고 있고 비슷한 유형의 담합행위는 더 대담해지고 있습니다.
한번 오른 물가는 쉽게 내려가지 않습니다. 민생경제 피해도 담합행위를 적발했다고 복구되지 않죠. 담합행위, 시장 질서 교란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하던지 리니언시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던지 최소한 둘 중 하나는 손을 봐야 할 것입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