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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너무 많아서, 피해자는 없었습니다"
입력 : 2026-02-03 오전 7:58:18
캄보디아에서 파생된 태국 범죄조직 '룽거컴퍼니'에서 활동한 한국 조직원 2명에 대해 검찰이 징역 30년형을 구형했습니다. 피해자는 최소 900명에 달하고, 피해액은 200억원을 넘습니다. 범죄의 조직성과 피해 규모를 감안하면 중형을 요구한 검찰의 판단 자체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형량보다 먼저 질문하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 재판에서 피해자들은 어디에 있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검찰은 "피해자를 추가로 확인하는 등의 이유로 재판이 재개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지난해 11월 한 차례 변론이 마무리된 이후에야 피해자 범위가 추가로 확인됐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재판 초기 단계에서는 피해자 특정과 정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수백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대규모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이는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라 절차 전반의 공백을 의미합니다.
 
기사 어디에도 피해자 통지 여부, 피해자 의견 제출, 배상명령 신청과 관련한 내용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피해자가 전산상 등록되지 않으면 재판 일정과 진행 상황, 결심공판 여부조차 피해자에게 통지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는 피해자이지만 제도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실제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피해자가 수백 명에 달해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어 피해자 등록을 하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많다는 이유로 피해자 등록이 생략될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이 사건은 구조적으로 '피해자 없는 사건'이 됩니다. 행정의 효율이 피해자의 권리보다 앞서는 지점입니다.
 
그 결과 피해자들은 배상명령 신청 제도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한 채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일부 피해자들은 결심공판이 열린 뒤에야 사건의 진행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는 피해자가 재판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참여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구조였습니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피해자는 방청객이 아닙니다. 의견을 제출할 권리가 있고 절차를 통지받을 권리가 있으며 피해 회복을 요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권리는 사건이 작을 때만 보장되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오히려 피해 규모가 클수록 더 철저히 보호돼야 할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 수가 많다는 이유로 피해자 지위가 행정적으로 누락됐고 그 공백 속에서 재판은 결심 단계까지 진행됐습니다. 범죄조직에는 '범죄단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피해자에게는 끝내 '피해자'라는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묻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많아질수록 피해자는 사라지는가. 수백 명의 피해가 발생하면, 제도는 그만큼 느슨해져도 되는가. 통지받지 못한 재판 절차, 안내받지 못한 권리는 과연 정상적인 사법 절차였는지 되묻게 됩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사진=뉴시스)
 
김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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