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림 테크노마트 PC상가에 진열된 노트북 모습.(사진=뉴스토마토)
지금 노트북을 새로 사려다 뒤로 물러난 사람, 아마 한둘이 아닐 것이다. 약 20년 전만 해도 99만원짜리 새 노트북이 출시됐는데 이제는 300만원이 보통의 가격이 됐다.
잠시 ‘라떼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2006년 당시 우리집 거실에는 가족이 돌아가며 쓰는 데스크톱 한 대가 있었는데, 잘 돌아가지도 않는 인터넷과 게임을 하기 위해 형제·자매들이 싸우기도 했다.
이후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90만원짜리 삼성전자의 R45를 손에 쥐었다.
물론 그때의 노트북은 지금 보면 ‘흉기’에 가까웠다. 2.7kg에 달하는 본체에 큼지막한 어댑터까지 챙기면 가방은 묵직한 벽돌 주머니가 됐고, 무릎 위에 올려서 사용하면 다리가 뜨끈해지는 난로역할까지 했다. 하지만 그 투박한 물건을 펼쳐놓는 순간, ‘앞서가는 얼리어답터가 된 것 같다’는 자부심도 들었다.
노트북은 변신을 거듭했는데 2000년대 후반에는 화면을 7~10인치로 줄인 넷북이, 그 다음에는 SSD가 들어가면서 속도는 빠르지만 더 얇고 조용해진 울트라북이 등장했다. ‘집에선 데스크톱, 밖에선 노트북’이라는 구분이 흐려지고 노트북 하나로 모두 다 하는 시대가 됐다.
성능만 놓고 보면 지금의 노트북은 20년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괴물’이다. 사진 몇 장만 열어도 쩔쩔매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웬만한 영상 편집과 고사양 게임도 가뿐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눈부신 발전의 대가가 너무 가혹해졌다는 점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지난 20년 동안 CPU·D램·SSD는 노트북을 더 빠르고, 가볍고, 오래 가게 만든 주인공이었는데 지금은 가격 폭등의 주범이 됐다.
실제 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하면서 노트북·PC에 들어가는 범용 D램 공급이 줄어들었고, 메모리 가격은 1년 새 7배 가까이 뛰었다. ‘칩플레이션(chip+inflation)’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최근 방문한 한 전자상가에서는 머신러닝용 PC를 조립하려면 1000만원이 훌쩍 넘는다고 했다. 새롭게 출시된 삼성전자의 갤럭시북 울트라는 5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을 요구했다. 최첨단 노트북은 우리에게 ‘개인 비서 AI’를 약속하지만, 그 비서를 고용하기 위해 치러야 할 기회비용은 2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싸졌다.
‘오늘 가격이 내일 최저가’라는 말에 중고 매장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노트북은 분명 더 가볍고 좋아졌는데 우리 삶은 그만큼 가벼워지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반도체의 진보가 곧 모두의 풍요로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이 노트북에 담겨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