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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근원
입력 : 2026-01-28 오후 11:58:33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군함과 탱크를 볼 때면 반갑습니다. K6 중기관총이 달려 있거든요. 미군의 M2를 국산화한 모델로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등장해 꾸준한 개량을 거치며, 1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역입니다.
 
서북도서방위사령부 도서방어 종합훈련에서 장병이 K6 중기관총 사격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군이 있는 곳에는 항상 M2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화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K6와 외관이 거의 같아 군 생활 당시 기억이 떠오릅니다. 
 
"실전에서는 귀마개를 낄 수 없다"는 중대장 말에 이어플러그를 빼고 사격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격발할 때마다 귀 안에서 '삐―' 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가끔 말소리가 또렷이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K6는 사람 하나를 겨냥하는 무기가 아니라 공간을 지워버리는 무기였습니다. 선을 긋듯 쓸어내고,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힘으로, 내 안에 쌓인 소음과 분노를 통째로 밀어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내면의 분노를 글에서 난사한다"는 지적을 들었습니다. 돌아보니 K6를 쥐고 있던 시간이 글에도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믿어왔습니다. 권위는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러나 제가 지나온 세계는 늘 위계를 먼저 내세웠습니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아도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위치, 말이 통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질서가 불편했습니다. 
 
그 반감은 어느새 스스로를 갉아먹는 태도가 됐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돼야지'가 아니라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를 먼저 떠올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권위와 위계, 말이 통하지 않는 구조를 향해 문장을 쏘아왔던 셈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방아쇠 대신 문장을 당기는 일뿐입니다. 다만 이제는 기관총처럼 난사하는 글이 아니라, 조준해 쓰는 문장을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 K6를 내려놓을 때가 됐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유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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