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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티’ 또는 취향의 관성
입력 : 2026-01-28 오전 11:59:23
여동생이 다니는 의류회사는 유명한 영국 영캐주얼 ㅋ 브랜드를 유통한다. 직원 세일 기간이 되면 동생은 양손 가득 옷 보따리를 들고 오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풍경이 벌어진다. 정작 타깃층인 30대 초반 남동생은 “귀여운 척하는 것 같다”며 거들떠도 안 보는데, 그 옷과 가방을 챙기는 건 늘 엄마다. “너무 귀엽다”는 이유다.
 
영캐주얼 옷을 대하는 엄마와 아들, 회사의 '복장 단속'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부장님의 귀여운 반란, 화려한 골프웨어 앞에서 '나잇값'을 고민하는 내면의 갈등, 그리고 마침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향을 당당하게 즐기는 '영포티'들의 유쾌한 모습. (사진=구글 제미나이)
 
동생이 전해준 사장님의 지시 사항은 매우 웃프다. “40대 부장들, 영캐주얼 옷 입고 거리에 돌아다니지 말라”며 수시로 단속을 하신다는 것. 사장님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아는 타 회사 선배는 쉰을 바라보면서도 주로 젊은이들이 타겟인 이 브랜드 가방을 들고 다니고, 내 동생이 이 회사에 다닌다는 걸 한 선배는 열쇠 고리가 귀엽다며 몇 개나 주문해 갔다. 그렇게 영캐주얼은 순식간에 ‘어르신 룩’이 되고 말았다. 아마 이 회사 대표가 가장 두려워하는 장면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귀여움’에 대한 고민은 요즘 내가 하고 있다.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옷장이 거의 골프웨어로 채워졌다. 골프웨어 매장은 그야말로 별천지다. 눈부신 원색, 큼지막한 로고, 무릎 위로 훌쩍 올라가는 짧은 치마. 순간 자기 검열을 하며 “제가 이걸 입어도 될까요?”라고 물으면 점원은 이렇게 답한다. “필드 아니면 어디서 입어보겠어요. 해외여행 가서 평소에 못 입던 옷 입는 기분으로 즐기셔요.” 무릎을 탁 치다가도 결국 그냥 나오기 일쑤다. 머릿속에 단어 하나가 떠올라서다. ‘영포티’.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귀여운 옷을 고르는 건 젊어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옷이 귀여워서다. 활력 넘치는 중년의 객기 같은 게 아니란 말이다. 나는 아직 청년이 끝났다는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
 
또한 과거의 40대와 지금의 40대는 종족 자체가 다르다. 예전엔 40대면 이미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 ‘기성세대’였지만, 지금은 100세 시대의 허리, 사회의 정중앙이다. 결혼은 늦어졌고(혹은 안 했고), 커리어는 길어졌으며, 삶의 리듬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마흔이 넘었다고 갑자기 알록달록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트로트라도 들어야 하냐는 말이다.
 
‘영포티’라는 말은 어쩌다 나왔을까. 기성세대가 개념 없는 사회 초년생들을 싸잡아 ‘MZ’라는 단어로 퉁치며 조롱하자, 그 반작용으로 40대를 ‘젊어 보이려는 발악’, ‘주책’쯤으로 묶어버린 건 아닐지. MZ가 ‘미성숙한 요즘 애들’이라는 비하라면, 영포티는 ‘분수 모르고 젊은 척하는 아저씨·아줌마’라는 낙인이다. 하나는 철이 없고, 다른 하나는 눈치가 없다는 식이다. 이보다 편리한 프레임도 없다.
 
이제 서로를 향한 그 손가락질은 좀 거둘 때도 됐다. 우리가 입는 후드티와 짧은 치마는 젊음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20대부터 이어져 온 취향의 관성일 뿐이다. 그리고 영캐주얼 사장님도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셔야 한다. 젊은 척한다고 욕먹는 그 부장들의 지갑이, 결국 그 브랜드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그저 ‘나’로서 살고 있을 뿐이다. 세상은 그걸 철없다고 부를지 모르겠다. 나이를 이유로 취향을 반납한다고 해서 그게 꼭 진짜 어른이 되는 길은 아닐 것이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윤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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