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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긴 유산들
입력 : 2026-01-27 오후 5:09:51
어느 나라의 역사든 모두 명과 암이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도 마찬가지죠. 군사독재라는 어둡고 수치스러운 시대가 있었던 반면 이에 맞선 시민들의 순수한 열망으로 이룩한 민주화 업적은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현대사에 느끼는 감정은 '제한된 자부심'입니다. 상처투성이에 흉하고 애처로운 단면이 있는가 하면 또 그래서 아름답고 애착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꽤 오랜 시간이 불합리와 불의가 온 나라를 지배했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로 진화해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고 모든 게 훌륭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엿한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해온 과정을 보면 이 나라의 국민으로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부터 최근 윤석열 내란 사태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기의 순간마다 늘 그 중심에는 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들과 민주화운동의 선봉에서 목숨과 청춘을 바친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헌신 덕분에 이 나라의 근간은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지난 25일 작고하신 이해찬 전 국무총리 역시 그러한 인물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민주 진영의 정신적 지주'. '전략과 정책에 능한 지략가', '킹메이커' 등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무수히 많지만, 분명한 건 그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굴직한 족적을 남긴 인물로 기록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처음으로 이해찬이라는 정치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이른바 '이해찬 1세대'로 일컬어지는 제 또래들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그를 처음 알게 됐을 겁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9년, 교육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그는 당시 고등학교 1학년부터 적용되는 대입 제도의 대대적 개편을 추진했고, 연일 뉴스와 신문에는 그의 이름과 새로운 교육정책이 오르내렸습니다.
 
'이해찬식 교육개혁 정책'은 이후에도 수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그의 교육정책의 취지와 방향성은 옳았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가치와 철학을 담은 정책이 잘못된 게 아니라 지금까지도 학력·스팩 지상주의에 매몰돼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에만 안주한 정책 운용자들의 실책을 지적해야 합니다.
 
교육개혁으로 통칭 됐던 그가 내세운 캐치프래이즈도 눈길이 안 갈 수 없었죠. '전 과목을 모두 잘하지 않아도 특기 하나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는 무시험 전형', '한 분야에 뛰어난 인재 육성 교육', '야간자율학습, 강제 보충수업, 모의고사 폐지' 등을 전면에 내세운 그의 교육정책들은 수많은 비판에 시달렸지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교적 여유로운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끔찍했던 야간자율학습이 일시적으로 폐지됐고, 수행평가나 방과 후 활동이 강화돼 잔꾀만 요령껏 부리면 소소한 일탈도 즐길 수 있어 늘상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는 않았었죠.
 
납득하기 어려운 수많은 규칙과 견디기 힘든 강압적 통제 속에서 질식할 것 같은 질풍노도의 사춘기 학창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돌파구는 있었던 거 같습니다. 덕분에 큰 사고나 일탈 없이 그 시기를 무탈하게 지나온 듯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그에게 감화됐던 건 학생을 교육의 도구로 취급하지 않고 정부 차원에서 학생 인권 강화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점입니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땐 촌지와 체벌이 공공연히 자행된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이해찬 교육부장관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하고 학생 인권이 존중받는 교육 현장을 만들기 위해 대입 전형 다양화, 수시 도입, 체벌 제한 조치 등 파격적인 정책들을 내놓았습니다. 외형으로만 보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은 꼬장꼬장한 어르신이 학생들의 인권과 다양성, 자율성을 존중하는 정책들을 강단 있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며 강한 호감을 느꼈습니다.
 
그때의 호감을 계기로 이후 대학을 다니면서, 졸업 후 직장인이 되어서도 그의 정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엔 국무총리로 재임하며 대정부질문에 불려 나갈 때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의원들을 철벽 논리와 특유의 까칠한 언변으로 박살 내 통쾌함을 느끼게 했고 행정수도 이전, 국가균형발전 정책 등 굵직한 국정 과제들을 추진하며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구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총 4명의 민주 진영 대통령 탄생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로도 평가받습니다. 그는 탁월한 전략가이자 유능한 행정가였습니다. 진보 진영이 분열과 갈등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해결사로 등판해 핵심을 꿰뚫는 명징한 통찰력으로 통합을 이끌어 냈고, 나아가 민주당을 전 세계 유례없는 거대 온라인 플랫폼 정당으로서 거듭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정부 중앙부처 세종시 이전이 추진돼 다시 행정수도 이슈가 부각되고 있고, 민주 진영은 합당 이슈로 연일 기 싸움이 치열합니다. 여기에 내란 잔재 청산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고인이 되신 이해찬 전 총리의 빈자리가 더욱 안타깝고 허탈하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과 인간의 이기심 속에서 퇴색되지 않고 굳건히 뿌리 내리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사진=나무위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
이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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