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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 사람은 산다
입력 : 2026-01-26 오후 5:39:28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혜지 기자] 오전 8시30분, 서울의 한 백화점 앞. 개점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까르띠에 매장 앞입니다. 개점 20분 만에 대기 팀이 50팀을 넘기자,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안내가 나옵니다.
 
샤넬의 클래식 맥시 핸드백은 5년 전 1000만원대였습니다. 지금은 2000만원을 넘깁니다. 같은 기간 프랑스에서는 65%, 미국에서는 60% 올랐지만, 한국은 100%가 뛰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 소비자는 같은 가방을 사기 위해 프랑스보다 약 100만원을 더 내야 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난 2024년 샤넬의 글로벌 매출이 4%가량 감소했는데도 한국 매출은 오히려 8%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세계가 명품을 덜 사는 동안, 한국은 더 비싼 가격에 더 샀습니다.
 
흔히 SNS가 과시욕을 부추겼다고 말합니다. 인스타그램이 시각적 과시의 공간이 되며 ‘보여주기’ 문화가 강화됐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 설명만으로는 왜 한국에서만 가격이 두 배가 되었는지, 왜 유독 한국 시장에서 매출이 늘었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명품 브랜드는 한국 시장의 심리를 정확히 읽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공식이 통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명품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증명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집 한 칸 장만이 어려워지고, 안정된 일자리와 미래의 확신이 멀어진 시대에, 명품은 손에 쥘 수 있는 몇 안 되는 ‘성취의 표식’입니다.
 
그 증명은 타인에게도,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도 향합니다. “나는 아직 뒤처지지 않았다”는 확인, “이만큼은 감당할 수 있다”는 안도 말입니다.
 
비싸야 선이 분명해집니다. 2000만원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곧 사회적 구별의 언어가 됩니다.
 
새벽부터 줄을 선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SNS를 끄거나 스스로를 다그친다고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할 길이 생기기 전까지, 그래도 살 사람은 삽니다.
 
 
이혜지 기자 zizi@etomato.com
이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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