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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소의 시대
입력 : 2026-01-19 오후 1:53:07
지난해 11월 애프터스쿨 출신 배우 나나씨의 자택에 흉기를 들고 침입한 30대 남성이 나나 모녀를 위협하고 상해를 가한 뒤 금품을 요구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남성은 나나의 어머니를 목 졸라 폭행했고, 이를 말리던 나나와 몸싸움을 벌이다 턱 부위를 다쳤습니다. 그는 강도 및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 송치됐습니다.
 
그러나 사건은 상식선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해자는 같은 해 12월 '나나에게 흉기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며 나나를 살인미수 및 특수상해 혐의로 역고소했습니다. 주거지에 침입해 폭행을 저지른 인물이, 정당방위로 대응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려 한 셈입니다. 경찰은 나나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이 남긴 불쾌함은 단순히 황당한 주장 때문만은 아닙니다. 명백한 가해와 피해의 구도가 있음에도, 법률을 통해 사건의 프레임을 뒤집으려는 시도가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주장을 법률적으로 대리해주는 변호사의 존재 역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모습은 학교폭력 사안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학교폭력위원회에 신고하면, 가해자가 다시 '맞폭'으로 신고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사건 판단이 당사자들의 주장과 제출 자료에 크게 의존하다 보니, 변호사를 선임해 논리를 정교하게 구성할 수 있는 쪽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실제로 학폭 처분을 받는 학생들 가운데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는 현장의 이야기는 이 제도의 그늘을 보여줍니다.
 
최근에는 학폭위 심의가 열리기 전에 맞폭 신고를 통해 서로 취하하는 방식이 하나의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 규명이 아니라, 법적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됩니다. 
 
성범죄 영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형 포털에는 성범죄 가해자들이 선처를 받는 방법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공개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범행 사례를 올리고 합의 요령을 묻거나, 반성문과 봉사활동을 통해 기소유예 등을 받을 수 있다는 경험담이 오갑니다. 의료 현장에서는 성폭력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들이 정신과 진단서를 통해 감형을 시도하는 사례도 실제로 존재합니다.
 
물론 현실은 복잡하고, 가해와 피해의 경계가 언제나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가해자인 상황에서도 법률을 동원해 책임을 흐리고, 오히려 피해자를 방어적인 위치로 몰아넣는 것이 일상화되는 것은 문제입니다. 갈등을 소통과 조정으로 해결하기보다, 법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려는 세태가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습니다.
 
법은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법률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자원과 비용이 결과를 좌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변호사를 통해 자신의 서사를 구성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사실을 충분히 설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법률 만능 시대라는 말은 더 이상 수사가 아닙니다. 법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 속에서 정의는 점점 상대적인 개념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청사. (사진=뉴시스)
 
이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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