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이토록 유용하다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생생하게 들려준 직업군은 의외로 법조계였다. 2년 전쯤 평소 알고 지내던 변호사는 소송 서면 작성에 AI가 얼마나 유능한지 열변을 토했다. 판례를 일일이 뒤질 필요 없이 핵심 쟁점만 입력하면 초안이 뚝딱 완성돼서다. 그는 “이제 예전 방식으로는 못 돌아가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AI가 대다수의 직업군을 대체해가는 가운데, 진실을 기록하는 '인간 기자'가 살아남아 현장 취재를 하고 있다. (사진=챗GPT)
OpenAI의 영상 제작 모델인 ‘소라(Sora)’를 처음 접한 것도 한 변호사를 통해서였다. “영상 만드는 언론사면 이제 이런 거 쓰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차마 그게 뭐냐고 묻지 못해 말문이 막혔다. 기자보다 변호사가 먼저 언론 기술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아예 기사 ‘우라까이(베껴 쓰기)’를 적발하는 AI 플랫폼을 업체와 개발 중이라고 했다. 언론재단과도 협업하게 될 것 같다며, 얼굴에는 새 먹거리를 발견한 사람 특유의 상기된 표정이 가득했다. AI가 기사의 유사도를 즉각 진단해 주면, 그 수치를 근거로 소장만 날리면 된다는 설명이었다.
가장 ‘보수적’이라고 여겨지던 법조계가 AI라는 파도를 이토록 적극적으로 타고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면서도 서늘하게 다가왔다. 흔히 AI가 공장의 육체노동을 대체할 것이라 막연히 짐작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한국은행의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AI 노출 지수가 높은 직업군은 의사, 회계사, 자산운용가, 변호사 같은 고학력·고소득 전문직에 집중돼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일은 이제 거대언어모델(LLM)이 인간보다 더 잘하는 영역이 됐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 다음이다. 보고서에서 기자는 상대적으로 AI 노출 지수가 낮은 직업군으로 분류됐다. 성직자, 대학교수, 가수 및 성악가와 함께 말이다. 기자의 일에는 현장 확인, 대면 취재, 인적 네트워크 그리고 이를 토대로 ‘야마(핵심 주제)’를 이끌어내는 통찰력과 판단력 등의 비정형적 요소가 필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기사는 AI가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고도의 ‘정성적 사유가 응축된 결정체’다.
물론 단순히 보도자료를 요약하거나 ‘우라까이’로 연명하는 기사는 이미 AI의 손쉬운 먹잇감이다. 속보 정리나 초안 작성은 이미 AI가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기사를 단순히 ‘쓰는 사람’으로만 머물러 있다면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변호사 지인의 ‘우라까이 적발 AI’는 엉덩이가 무거운 기자들을 솎아내는 서슬 퍼런 거름망이 될 것이다.
진짜 저널리즘의 영역은 다르다. AI는 인터뷰이의 흔들리는 눈동자나 떨리는 목소리 뒤에 숨겨진 진실을 감지하지 못한다. 자꾸만 답변을 피하는 취재원의 태도에서 “여기에 무언가 더 있다”는 직관적인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비언어적 맥락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기계의 데이터가 될 수 없다. 여기에 사실 관계를 교묘하게 왜곡하거나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AI 특유의 ‘환각’ 현상은 정보의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정보의 진위가 흐릿해지고 AI가 생성한 가짜 정보가 범람할수록, 역설적으로 “‘인간 기자’가 직접 확인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희소하고 값비싼 가치가 될 것이다.
단순히 보도자료를 베껴 쓰는 ‘기사 작성자’는 사라지겠지만, 현장을 누비며 권력을 감시하고 복잡한 세상의 맥락을 짚어주는 ‘저널리스트’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단순한 사실의 조합을 넘어, 정보에서 가치판단을 이끌어내고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민하며 꾹꾹 눌러쓴 글의 무게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팩트를 나열하는 ‘라이터’에게는 위기의 시대지만, 진실을 추적하는 ‘저널리스트’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뇌’를 업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다행스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