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개인 비위 논란이 불거지자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특별감사를 통해 해외 출장비 과다 집행과 이중 급여 등 도덕적 해이 문제가 드러난 이후입니다. 농협중앙회 수장이 공개 석상에 나와 고개를 숙인 것은 그만큼 사안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방증이지만, 사과의 방식과 태도는 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강 회장의 사과는 10분 남짓에 그쳤습니다. 준비된 사과문을 읽은 뒤 곧바로 회견장을 빠져나갔고, 취재진의 질문은 단 한 건도 받지 않았습니다. 해외 출장비를 왜 그렇게 썼는지, 계열사로부터 받은 급여는 어떤 근거였는지, 회장으로서 어디까지 책임을 질 생각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회장이 직접 나섰다는 형식만 있을 뿐, 내용은 빠진 사과였습니다. '반쪽 사과'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사과회가 열리기 전부터 회견장은 묘하게 긴장된 분위기였습니다. 농협중앙회 측은 취재진에게 임원들의 이동 동선을 사전에 안내하며, 질서 유지를 이유로 사진까지 제시했습니다. 질문 역시 사전에 하지 말아달라며 사실상 차단했습니다. 대국민 사과라는 말이 무색하게 현장은 철저히 통제된 모습이었습니다. 실제 사과회가 시작된 뒤에도 강 회장은 사과문을 읽는 데만 집중했고, 질문을 받지 않은 채 곧바로 자리를 떴습니다.
중앙회 측이 내놓은 설명은 궁색했습니다. "현재 감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공식적인 질의응답이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감사 중이라는 이유가 질문 자체를 막아야 할 명분이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사과란 책임을 인정하고 설명하는 과정인데, 정작 가장 기본적인 소통은 배제됐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장면은 과거 농협중앙회장의 사과와 비교하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지난 2014년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 사고 당시 최원병 전 농협중앙회장은 대국민 사과 직후 기자들과 마주 앉아 사고 경위와 후속 대책에 대한 질의응답을 진행했습니다. 당시에도 비판은 거셌지만 최소한 질문을 피해 가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이번 강 회장의 사과는 일방적으로 준비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쳤고, 쌍방향 소통은 처음부터 배제됐습니다.
농협중앙회장이 갖는 상징성도 이번 사과의 무게를 더합니다. 농협중앙회장은 전국 1100여개 지역 농협을 아우르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입니다. 흔히 '농민 대통령'이라 불릴 만큼 권한과 책임이 큰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는 인물이 도덕성 논란의 중심에 섰다면, 사과 역시 그에 걸맞은 설명과 책임이 뒤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과에서는 책임의 범위도,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빠져 있었습니다.
더욱이 강 회장은 사과문에서 임원진의 자진 사임과 조직 쇄신을 강조했지만, 정작 본인의 거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실무 책임자들이 물러나는 동안 회장은 자리를 지키며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구상만 내놨습니다. 책임은 아래로 내려보내고 결정권자는 남아 있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결국 이번 사과는 '사과했다'는 사실만 남겼을 뿐, 의문을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무엇을 바꿀 것인지에 대한 답은 없었습니다. 질문을 받지 않는 사과는 설명을 거부한 사과와 다르지 않습니다. 강 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묻지 마식 사과'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13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 대회의실에서 대국민사과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