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AI 산업을 위한 물리적 인프라는 구축됐지만, 일각에서는 우려가 제기됐다. 엔비디아 중심의 AI 생태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메모리에 특화된 국내 반도체 산업 구조를 고려하면, AI 가속기 등 비메모리 분야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정부도 이를 의식하고, 자체적인 AI 생태계 강화를 위해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 등 국산 AI 반도체 기업을 돕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 9일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서 “내년에 약 1조 원 규모의 실증·생산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며 “과기부·중기부 등과 함께 이런 기업이 ‘자칫하면 죽을 수 있는’ 상황을 막고, 반드시 살려내겠다”며 금전적 지원을 예고했다.
26만장의 엔비디아 GPU를 구입할 당시 ‘국산 장비를 일부라도 사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수요처에 한계가 있으니 정부가 제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간접적 지원을 해 달라는 것이다. 단순한 매출 상승을 넘어 산업 현장에서 제품을 실증하고 데이터를 확보할 기회를 주고, 성장할 발판을 마련해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상론에 치우친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현금성 지원에 나선다 해도, 이미 수백조원을 투자해 시장을 선점한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 기술력을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 이미 전장, 자동차, 반도체 등 피지컬 AI에 필수적인 주요 제조 역량을 두루 갖췄다. 아직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하지 않은 단계인 만큼, 선제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여지도 충분하다.
그러나 AI가 산업 전반은 물론 국방, 안보 등 국가의 틀을 이루는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AI 반도체 개발에 국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귀 기울일 만하다. AI 데이터센터 확보 과정에서 엔비디아 GPU 등 외국산 제품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리벨리온의 기업가치는 2조원에 육박하는 등 국내 기업들의 높은 성장 가능성도 엄연하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지난해 12월 “구글이 TPU를 통해 시장에서 유의미한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며 “AI 시장은 1~2년 만에 성과를 이뤄낼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고 했다. 투자 대비 성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AI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시간이 금인 것도 사실이다. 선택과 집중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