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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있는 집
입력 : 2026-01-07 오후 11:51:01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패딩을 기워 입습니다. 꿰맬 수 없는 곳에 구멍이 하나둘 생기더니 이제 주머니마저 뜯어졌습니다. 처음 소매가 터졌을 땐 솜씨 좋다는 백화점 수선실을 찾아갔지만, 이제는 직접 열전사지(열로 붙이는 보강 패치)를 덧대 입습니다. 다리미가 없어 달군 냄비로 대신합니다.
 
보스턴 고사리. (사진=뉴스토마토)
 
꽤 비싼 돈을 주고 사서, 애지중지 입었습니다. 험한 일 할 때는 집에 고이 모셔두었고요. 그 밖에는 어느 겨울에나 저와 함께였죠.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나 기자가 될 때까지. 12월3일 밤 707특임단원들을 향해 달려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거와 현재, 같은 패딩의 주머니 사정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삶이 넉넉해진 적은 없고, 춥고 배고픈 시절의 감각은 쉽사리 빠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돈을 쓸 때면 앞뒤를 재지 못합니다. 기아에 시달리던 사람이 폭식으로 기울 듯 소비에서도 균형을 잃습니다.
 
여전히 스물여섯 살에 들어온 그 집에 8년째 살고 있습니다. 올리브나무 '올가'와 동백나무 '다동'이도 함께였어요. 함께 살기 시작한 날도 적어두었습니다. 2022년 5월7일과 2023년 10월21일.
 
그들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예쁜 5평 집이었습니다. 작디작은 방이지만 나 말고도 살아 있는 존재가 더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마음을 놓이게 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다동이가 '똑' 하고 부러졌습니다. 아주 작은 몸통만 남긴 채였습니다. 회생 불능.
 
너무 허무해서, 한동안 그대로 두고 봤습니다.
 
올가도 마찬가지였어요. 모든 잎이 갈색으로 변하고 말려든 상태. 겨울이어서 그렇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뿌리부터 줄기까지 잘라본 모든 곳에서 생명의 기운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름까지 지어줬던 두 식물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난방을 할 때와 안 할 때 극심한 온도차가 나는 실내 겨울 환경이 올리브나무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적당히 낮은 온도와 자연광 주기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베란다에서 겨울에는 휴면이 필요하다는 점도. 
 
다동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차가운 겨울'을 전제로 사는 나무라 그저 추운 곳에 두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견딜 수 있는 추위가 따로 있었습니다. '0도 안팎에서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고, 바람이 적은 곳.'
 
간신히 숨만 붙들고 있었는데, 저만 몰랐습니다.
 
보스턴 고사리 '하루'만 남았습니다. 아픈 잎을 버려야 사는 식물이라고 해서 노랗게 뜬 잎도 모조리 쳐냈습니다. 저면관수(화분 아래에서 물을 먹이는 방식) 하고, 신선한 공기가 도는 새 자리도 잡아줬습니다.
 
물받침에 마사토를 깔고, 마사토의 반만큼 물을 채웠습니다. 그 위에 종지를 올리고, 다시 화분을 얹어 수분이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는 공기층을 만들어줬습니다. 풍성했던 잎은 사라졌지만 가느다란 초록 줄기가 6개 남았습니다.
 
언젠가 베란다가 있는 집에 살고 싶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유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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