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아들이에요.”
“전업자녀 생존 1일 차, 퇴근하신 부모님 저녁 차리는 중입니다.”
“올해 취업이 너무 안 돼서 부모님이 정규직으로 채용해주셨어요. 밤에는 안마도 해드리고, 약도 챙겨드려야 해요. 표준 근로계약서도 있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전업자녀’ 브이로그. (사진=유튜브 이용자 ‘ssue124’ 영상 갈무리)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종종 마주치는 영상들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부모의 아침상을 차리고, 장보기 목록을 꼼꼼히 확인하는 청년들의 브이로그. 영상 하단에는 ‘전업자녀’라는 자막이 붙어 있다. 부모에게 고용된 노동자임을 자처하며 매달 일정 금액의 ‘월급’을 받는 설정이다. 댓글에는 ‘효도하는 백수’라는 말이 달리지만, 웃고 넘기기엔 씁쓸한 구석이 있다.
미혼인 탓에 한동안 “비혼주의자냐”는 질문을 받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라며 “비혼주의라는 게 정말 있는 건가요?”라고 되물었다. 누군가는 충분히 고민한 끝에 비혼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또 다른 누군가는 선택이라는 말로 감싸기엔 선택할 수 있는 조건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 놓인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고립에 취약한 존재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전업주부라 하더라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다. ‘맘충’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유치원과 학교의 학부모 네트워크에 어떻게든 연결되려는 마음 역시, 결국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다는 욕구와 맞닿아 있을 것이다.
‘전업자녀’나 ‘비혼주의’처럼 세련된 언어들은 때로 청년 실업과 경제적 궁핍이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 흔들리는 자아를 지키는 완충 장치로 기능한다. 실패를 그대로 말하기보다, 스스로 다른 길을 택했다고 설명하는 편이 개인에게는 덜 아프기 때문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적응하는 하나의 방식인 셈이다.
청년들이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그 고백이 곧바로 실패자라는 낙인으로 되돌아오지 않는 사회. 그런 조건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는 한, 유튜브 속 전업자녀의 일상은 아마도 계속 재생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브이로그를 통해 ‘효도’나 ‘특이한 선택’을 소비하기보다 왜 이런 설명이 필요해졌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업자녀’라는 이름은 어쩌면 삶의 방식이라기보다, 현실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방패일지도 모른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