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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첫 문장에서 시작된다
입력 : 2026-01-05 오후 3:15:54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가 되면 우리는 같은 인사를 나눕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말입니다. 특별한 의미를 담지 않아도, 그 인사는 자연스럽게 오가곤 합니다.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순간은 대개 이런 사소한 말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관계의 깊이를 함께 보낸 시간이나 연락의 빈도로 가늠하곤 합니다. 오래 알고 지냈다면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고, 자주 연락하면 관계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해서 관계가 저절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관계는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난 뒤 어떤 태도로 남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며칠 전,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한때 사제지간으로 시간을 함께 보냈던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비교적 오랜 기간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했지만, 이후 약속은 거듭 미뤄졌고 연락도 한쪽에서만 이어지다 끊겼습니다. 관계를 이어가려는 선택은 점차 한쪽에서만 감당해야 하는 상태가 되었고, 그 지점에서 저는 그 관계를 더 이상 현재형으로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미 끝난 관계라고 생각하던 어느 날, 과거 함께 주고받던 메시지 내용과 제 사진이 사전 동의 없이 SNS에서 영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느낀 불편함은 관계가 끝났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달라진 거리와 상황에 대한 확인 없이, 과거의 맥락이 그대로 다시 호출된 데서 비롯된 감정이었습니다.
 
관계의 흔적이 다시 쓰이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랜만에 오는 연락이나 새해 인사가 불편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기억해줘서 고맙고, 안부를 건네는 마음이 반갑게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관계는 짧은 말 한마디로 다시 부드러워질 수도 있고, 잠시 멈춰 있던 사이가 풀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아쉬웠던 것은 그 말의 방향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연락을 한다는 말 한마디, 그동안 소원했던 이유를 짧게 전하고, 사용에 앞서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게 왜 문제냐"는 식의 대응이 이어지는 순간, 이 일은 관계의 오해가 아니라 기준의 차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문제는 설명의 부족이 아니라, 지금의 거리와 상황을 묻는 질문 자체가 생략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관계는 늘 뜨겁지도, 늘 차갑지도 않습니다. 그 상태는 첫 말에 따라 부드러워질 수도 있고, 같은 말 한마디로 더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같은 짧은 안부는 관계를 되돌리기보다,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확인하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관계를 이어가게 만드는 것도, 그 자리에 머물게 하는 것도 대개는 큰 선택이 아니라 첫 문장입니다. 그 문장이 무엇을 묻고 무엇을 생략했는지가, 관계의 다음 장면을 조용히 정합니다.
 
새해 인사 메시지. (사진=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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