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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초의 경쟁, 유료방송은 왜 이렇게 예민해졌을까
입력 : 2025-12-23 오후 7:10:18
연말이면 정부는 유료방송 품질평가 결과를 발표합니다. 유료방송 사업자 간 경쟁을 촉진하고 이용자 편익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이죠. 
 
그런데 유료방송 품질평가 점수를 뜯어보면 사실 큰 차이는 없습니다. 채널 전환시간은 0.4초냐 0.5초냐의 싸움이고, 영상 체감 품질 점수는 다 같이 4.6~4.7점대에 모여 있습니다. 서비스 이용 만족도 역시 67점 안팎에서 엎치락뒤치락합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누가 압도했다고 말하기엔 다소 민망한 수준입니다. 
 
유료방송 시청 화면. (사진=뉴스토마토)
 
그런데 이 점수표가 나오면 업계의 공기는 갑자기 날카로워집니다. 자기 회사가 앞선 항목에서는 이름이 제목 맨 앞에 나가야 하고, 다른 점수가 조금이라도 높은데 뒤에 배치되면 바로 항의가 들어옵니다. '왜 우리가 먼저 안 나오느냐'는 질문이 점수표보다 더 빠르게 날아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민감함은 국내 유료방송 시장이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비슷해졌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죠. 네트워크도, 화질도, 속도도 이미 상향 평준화됐습니다. 기술 경쟁은 사실상 결승선을 통과했고, 남은 건 소수점 아래의 차이입니다. 0.1초, 0.5점, 몇 초의 광고 시간. 이 미세한 틈에서라도 1위라는 이름을 붙여야 존재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경쟁할 게 없으니 경쟁을 만들어내는 셈이죠. '체감은 우리가 앞섰다', '기술은 우리가 선두다'라는 문장이 필요해집니다. 숫자는 비슷해도, 네이밍은 양보할 수 없는 셈입니다. 그래서 점수보다 순서가 중요해지고, 결과보다 제목이 더 민감해집니다.
 
어쩌면 이 풍경 자체가 유료방송 시장의 현주소입니다. 압도적인 승자도, 뚜렷한 패자도 없는 시장. 모두가 비슷한 점수표 위에서 1위라는 단어를 차지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서가 아니라, 경쟁이 희미해졌기 때문에 벌어지는 풍경입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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