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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공급보다 중요한 계약 조건
입력 : 2025-12-23 오후 4:00:36
배터리 업계와 완성차업체 간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계약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복잡한 조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양측이 공개하는 계약 규모 외에 최소 구매 물량, 위약금 조항, 기술 사양 변경에 따른 재협상 조건 등 민감한 내용들이 면밀하게 설계돼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를 찾은 참관객들이 금양 부스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제는 이런 계약들이 체결 당시의 시장 전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전기차 시장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일 경우, 계약 조건들은 한쪽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최근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이러한 계약상의 균열이 가시화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완성차업체들은 앞다투어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지만, 2023년 이후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가 예상에 미치지 못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 생산 목표를 하향 조정하기 시작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배터리 수요 감소로 이어졌다. 배터리 제조사들은 이미 수조 원을 투입해 공장을 지었지만 주문이 줄어들면서 고정비 부담을 떠안게 됐고, 일부 프로젝트는 지연되거나 축소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상황은 특히 미묘하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과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며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해왔다. 
 
하지만 최근 실적을 보면 성장세가 둔화되거나 수익성이 악화되는 모습이 보인다. 배터리 업체들은 대외적으로 장기 계약이 안정적이라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완성차업체들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계약 해지나 물량 축소가 법적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고, 특정 완성차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그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배터리 산업은 이제 성장의 시기를 지나 구조조정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지금까지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왔지만, 앞으로는 계약 관리 능력과 리스크 대응 능력도 똑같이 중요하다.
 
공급계약 발표 뒤에 숨겨진 조건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그리고 시장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지가 승패를 가를 것이다. 배터리 업계는 이제 계약서의 행간을 좀 더 신경 써야 할 때가 아닐까.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표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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