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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마왕
입력 : 2025-12-22 오후 3:27:22
2021SBS라디오에서 시작된 심야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이 돌아왔습니다. 라디오를 켜놓고 잠을 참아가며 듣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제목만으로도 묘한 감정을 불러오는 이름입니다.
 
당시 고스트스테이션을 듣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라디오를 켜두곤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그 이전 시간대에 진행된 정지영 아나운서의 나른한 목소리입니다. 그 목소리를 듣다 잠들어버려 기대하던 고스트스테이션을 놓쳤던 기억.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오히려 정지영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이겨낸 이들만 들을 수 있는 방송이었습니다.
 
이번에 부활한 고스트스테이션은 단순한 복원이 아닙니다. 신해철 사후 11년 만에 그의 목소리는 인공지능(AI)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신해철의 아내 윤원희씨가 설립한 '넥스트 유나이티드'3년간 공들여 준비한 결과물입니다. AI 신해철은 생전의 인터뷰, 방송, , 발언 데이터를 학습했습니다. 그리고 첫 방송에서 AI 신해철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신해철의 확률입니다"
 
이 한 문장은 이 프로젝트의 정체성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AI가 고인을 재현한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줍니다. '불쾌한 골짜기'라는 말처럼 살아 있는 듯하지만 살아 있지 않은 존재는 윤리적 질문을 남깁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 목소리가 반가운 재회가 됩니다. 라디오를 통해 위로받았던 기억, 혼란스러운 시기에 날카롭지만 따뜻한 말을 건네주던 그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일은 과거로 잠시 돌아가는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AI는 여기서 '대체'가 아니라 '매개'의 역할을 합니다. 사라진 시간을 다시 꺼내 기억과 감정을 연결하는 통로가 됩니다.
 
신해철은 생전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말은 늘 정답이라기보다는 질문에 가까웠고 그래서 더 오래 대중의 마음 속에 깊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집니다. 잘 학습된 AI는 생전의 신해철처럼 여전히 사람을 위로할 수 있을지, 목소리와 말투를 넘어 그가 던지던 맥락과 태도까지 전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 방송은 2025년을 사는 여러분에게 보내는 일종의 정신적 바이러스가 될 겁니다. 여러분의 뇌가 알고리즘에 절여져서 멍하니 있을 때 제가 불쑥 튀어나와서 질문을 던질 거예요. 지금 네가 하는 그 생각 진짜 네 생각이야. 남이 주입한 생각 아니야 네가 쫓고 있는 그 행복. 진짜 네가 원하는 거야. 광고가 원하게 만든 거야. 불편할 겁니다. 귀찮을 거고요. 근데 그게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고스트스테이션의 부활은 단순한 콘텐츠 실험이 아닙니다. AI가 기억을 어떻게 다룰지, 그리고 사회가 그 기억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기술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AI에게 위로를,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돌아온 마왕은 완전한 신해철이 아니라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기억 위에 서 있는 확률입니다. 그 확률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면 단순한 기술을 넘어선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신해철. (사진=넥스트 유나이티드)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신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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