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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쿠팡을 떠날 수 없나
입력 : 2025-12-22 오후 3:45:53
마트 배송이든, 마켓컬리든 몇 번을 시켜도 달걀은 늘 깨져 있었다. 깨졌다고 연락하면 배상은 해준다. 하지만 고객센터에 연락해 답변을 기다리고, 박스에 붙은 달걀 조각을 떼어내고 냄새나는 쓰레기를 버리는 일까지 포함하면 ‘보상’은 늘 번거로움의 다른 이름이었다.
 
서울 시내 쿠팡 물류센터 모습. (사진=연합뉴스)
 
쿠팡은 달랐다. 완충재로 몇 겹을 둘러싸 달걀이 깨지려야 깨질 수 없는 상태였다. 박스 자체가 ‘달걀의, 달걀에 의한, 달걀을 위한’ 박스였다. 베개를 샀다가 높이가 맞지 않으면 이유를 묻지 않고 환불이 됐고, 동생 집으로 보낸다는 게 실수로 우리 집으로 배송해도 ‘배송지 오류’라는 사유로 바로 취소가 됐다. 신선식품의 유통기한이 생각보다 짧아 “기한 내 다 못 먹을 것 같다”고 해도 즉시 환불 처리를 해줬다. 쿠팡은 혁신 자체였다. 단순히 빠른 배송을 넘어 소비자를 믿어주고, 소비자가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었다.
 
최근 패딩을 사기 위해 백화점과 플래그십 스토어를 몇 군데나 돌았다.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어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고, 신세계 인터내셔널 사이트에서 구매했다. 며칠 뒤 쿠팡에 같은 제품이 15만원이나 더 저렴하게 올라와 있는 것을 봤다. 부도 위기에 놓인 세계 최대 규모 명품 플랫폼 ‘파페치’를 직접 인수한 덕에 유통 비용의 절감분이 소비자 후생으로 돌아온 것이다.
 
최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데 주변에서 쿠팡을 끊겠다는 결심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 개인통관고유번호도 여태 새로 발급받지 않았다. 실제 이용 지표에서도 뚜렷한 이탈은 관측되지 않는다. 앱·결제 데이터 분석 기업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 1~7일 쿠팡 앱의 주간 활성이용자 수(WAU)는 2993만5356명으로, 한 달 전보다 약 4.1% 증가했다. 지난달 29일 개인정보 유출 사실이 알려진 이후에도 이용자 수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우리는 왜 쿠팡을 떠날 수 없는가. 이는 소비자의 맹목적 선택이라기보다, 대체 불가능한 구조의 결과에 가깝다. 빠른 배송, 낮은 가격, 관대한 환불 정책이 결합된 서비스는 더 이상 ‘쇼핑 앱’이 아니다. 일상의 ‘인프라’다. 
 
대체 불가능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쿠팡은 처음부터 ‘계획된 적자’를 전제로 했다. 물류센터와 배송망, 기술과 인력에 막대한 자본을 선투입하고, 수익은 나중에 회수하는 방식이었다. 시간이 필요했고, 적자를 견뎌줄 자본이 필요했다.
 
이 모델은 한국에서 의심과 비판의 대상이 됐다. 장기 적자를 감내하는 성장 전략은 쉽게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쿠팡은 비전을 끝까지 밀어붙이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자본을 지원받았다. 김범석 의장이 국회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에 “나는 글로벌 CEO”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사과의 방식과 수위가 국내 여론의 기대와 어긋나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배경이 기업의 책임을 덜어주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쿠팡의 잘못은 분명히 짚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물어야 한다. 왜 이런 기업은 한국에서 나오기 어려웠는지. 이번 쿠팡 사태는 한국 사회가 이해하지 못한 혁신이 국경을 넘어 방치됐다가 어떤 모습으로 되돌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우리는 또 다른 쿠팡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윤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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