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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사이언스)2000년 견딘 로마 콘크리트의 비밀
MIT 연구진, ‘자기 치유’ 건축기술 밝혀
입력 : 2025-12-22 오전 9:25:33
고대 로마 제국의 위대한 건축 혁명은 콘크리트에서 시작됐습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로마의 원형경기장, 신전, 교량, 수로 가운데 상당수는 약 2000년 전 만들어진 콘크리트 구조물입니다. 현대 콘크리트보다 훨씬 오래 버틴 이 재료의 비밀을 두고 과학자들의 탐구는 수십 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이 수수께끼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곳은 뜻밖에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시간이 멈춘 도시, 이탈리아 폼페이였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은 최근 폼페이에서 새롭게 발굴된 고대 로마의 건설 현장을 정밀 분석해, 로마 콘크리트가 어떻게 수천 년 동안 스스로 균열을 복구하며 살아남았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12월9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됐습니다.
 
새로 발굴된 폼페이 유적지에서 발견된 고대 벽체. 이곳에서 MIT 연구진은 조성 분석(오른쪽에 중첩 표시)을 적용해, 고대 로마인들이 수천 년 동안 견뎌온 콘크리트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규명했다. (사진=Archaeological Park of Pompeii, MIT)
 
“균열 생기면 스스로 회복”
 
MIT 아드미르 마식(Admir Masic) 교수 연구진은 2023년 논문에서 이미 로마 콘크리트의 장수 비결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화산재와 석회석을 섞은 뒤 물을 붓는 과정에서 고온 반응이 일어나며, 이때 생성된 석회 입자(lime clasts)가 콘크리트 내부에 작은 흰색 자갈처럼 남게 됩니다. 이 석회 입자는 시간이 지나 균열이 생기면 다시 녹아들어 틈을 메우는 역할을 합니다. 즉, 로마 콘크리트는 균열이 생기면 스스로 회복하는 ‘자기 치유(Self-healing)’ 재료였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 가설에는 한 가지 난관이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 최고의 건축 이론서로 꼽히는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건축론(De architectura)』에는 석회에 먼저 물을 부어 반죽한 뒤 다른 재료와 섞었다고 기록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식 교수는 “비트루비우스는 고대 건축의 교과서를 쓴 인물”이라며 “그의 설명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연구자로서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연구의 전환점은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그대로 봉인된 폼페이의 한 건설 현장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직 사용되지 않은 원재료 더미, 공사 중이던 벽, 완공된 구조물, 보수 흔적까지 완벽에 가깝게 보존돼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현장에서 물과 섞기 전 단계의 건식 혼합 재료 더미를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는 석회석을 태워 만든 생석회(quicklime) 조각이 화산재와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이는 물을 나중에 붓는 ‘고온 혼합(hot-mixing)’ 방식이 실제로 사용됐음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였습니다.
 
MIT 크리스틴 베르그만(Kristin Bergmann) 교수는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고온에서 반응한 석회와 비트루비우스가 책에서 기술한 전통적인 소석회(slaked lime)를 명확히 구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식 교수는 “로마인들은 석회석을 태워 만든 생석회를 특정 크기로 분쇄한 뒤 화산재와 마른 상태로 섞고, 마지막 단계에서 물을 부었다”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열이 콘크리트의 화학적 역동성을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구진은 콘크리트에 섞인 화산재, 특히 부석(pumice) 성분에도 주목했습니다. 부석은 화산 폭발 때 생성되는 가공성 화산유리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흰색이나 크림색 같은 옅은 색을 띱니다. 분석 결과, 이 화산 입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의 수분과 반응해 새로운 광물을 만들어냈고, 이는 콘크리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즉, 로마 콘크리트는 굳은 뒤에도 내부에서 화학 반응이 계속 일어나는 ‘동적 시스템(dynamic system)’이었던 셈입니다. 마식 교수는 “이 재료는 지진과 화산 폭발을 견뎌냈고, 바닷속에서도 분해되지 않았다”며 “수천 년 동안 스스로를 복구하며 살아남은 재료”라고 평가했습니다.
 
고대 로마 콘크리트 생산 과정의 개략적 요약. 먼저 화산재와 생석회를 건식으로 혼합한 뒤(a), 내수성과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잘게 부순 테라코타 조각을 더했다(b). 이후 물을 첨가해 화학 반응을 유도했으며(c), 벽화나 보수용 모르타르에는 별도로 소형 용기에서 석회를 소화시키는 공정을 사용했다(d). 완성된 모르타르는 깨진 암포라에 담아 운반한 뒤(e) 흙손으로 벽체 사이에 층층이 발랐고(f), 수직 정렬은 추로 확인했다(g). 골재는 도끼로 돌을 쪼개 만들어 사용했다(h). (사진=Nature Communications)
 
이번 연구는 고고학적 의미를 넘어 현대 건설 기술에도 시사점을 던집니다. 마식 교수는 고대 로마 콘크리트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현대 기술에 적용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로마 콘크리트는 내구성이 뛰어나고, 스스로 치유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며 “이런 재결정화 과정은 현대 재료공학자들에게는 꿈 같은 메커니즘”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식 교수는 이미 고대 콘크리트의 원리를 현대화하는 스타트업 ‘DMAT’를 설립해, 지속 가능한 차세대 콘크리트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비트루비우스는 정말 틀렸을까
 
연구팀은 고대 건축 이론의 권위자인 비트루비우스의 기록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마식 교수는 “비트루비우스도 혼합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언급하고 있다”며 “후대 해석 과정에서 그의 기술이 단순화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폼페이의 건설 현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식 교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마치 로마 노동자들이 곧 돌아와 일을 계속할 것 같았다”며 “고고학자들이 내가 흙더미를 보고 울었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2000년 전 로마의 건설 현장 유적이 이렇게 현대 과학자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비유는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지속가능한 건축과 재료를 모색하는 오늘날, 고대 로마 콘크리트는 미래 기술의 교과서가 되고 있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임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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