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태로 논란이 된 쿠팡에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는 청문회를 열고 쿠팡 관계자를 향해 이번 문제에 대한 지적을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적 물음에 대답해야 할 김범석 INC 의장과 강한승·박대준 전 쿠팡 대표가 불출석했습니다. 대신 취임한 지 일주일 된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참석했습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관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 국적의 한국말은 하나도 모른다고 한 로저스 대표는 통역이 옆에 있음에도 엉뚱한 말로 '동문서답'만 했습니다. 그러자 과방위 위원들은 "영어 듣기 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다"라며 질책했습니다. 결국 맹탕 청문회로 그쳤는데요. 과방위 소속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국회 역사에 깊은 수치"라고 평가했습니다.
연일 보도되는 쿠팡 관련 의혹은 그동안 왜 사고가 끊이지 않았는지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가 죽음에 이르는 동안 쿠팡 임직원들은 기업에 투자보단 보다 적은 돈으로 피해를 막기 위한 투자에만 몰입했습니다. 쿠팡의 수익 90%를 한국에서 벌고 있음에도 그는 미국 기관에 로비로 자금을 쓰고, 국내에서도 역시 대관 업무 기능을 확대하면서 잇속 차리기에 급급한 모습입니다.
그 민낯은 지난 17일 청문회가 열리기 바로 전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해롤드 로저스 임시대표 명의의 보고서를 등록한 사실이 확인됐는데요. '중대한 사이버 보안사고'란 제목의 보고서는 쿠팡이 지난달 18일 "고객 계정에 대한 무단 접근이 발생한 사이버 보안 사고를 인지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약 3300만 개에 달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인데요. 그럼에도 이 일로 쿠팡의 사업 운영에 중대한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자체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규제당국이 조사를 개시했고, 쿠팡은 이에 전면 협조하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하지만 보고서와 달리 쿠팡은 국회가 요구한 자료의 절반 이상에 대해 제출을 거부했습니다.
한국 국회에 자료 요구는 무시하면서 청문회 전날 부랴부랴 미 증권거래위에 보고서를 등록한 이유는 의문스러웠는데요. 사실을 파악해 보니 미국에선 이 같은 사고가 나면 인지 후 4일 내 보고서를 등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정부 규제 등이 부실하다는 이유입니다.
또 이번 일로 매출에 영향이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는데요. 쿠팡처럼 수많은 제품을 새벽에 배송할 수 있는 기업이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결국 독점 기업으로 성장한 쿠팡은 그야말로 '깡패'나 다름없는 모습인데요. 실제 많은 이들이 편리함으로 쿠팡 이용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길들여졌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편리함에 길들여진 대가가 개인정보 유출과 노동자의 희생, 그리고 책임 없는 기업이라면 그 편리함은 결코 값싸지 않습니다. 독점 기업이 통제받지 않을 때 시장은 소비자를 보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쿠팡의 형식적인 사과가 아니라, 국회와 정부의 실질적인 규제와 감시, 그리고 소비자의 분명한 선택입니다. 독점의 폐해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