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왼쪽)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3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오찬 회동을 마친 뒤 취재진 질의응답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또다시 주택 공급 대책 발표를 미루면서 부동산 시장에 실망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공급 문제는 신뢰성이 중요해 발표를 늦출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연내 추가 대책을 예고했던 당초 약속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입니다.
정부가 시장 신뢰를 강조하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미 여러 차례 공급 확대를 약속해놓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늦춰서 제대로 하겠다'는 말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오히려 시장은 정부가 뾰족한 수가 없어 시간을 끌고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발표한 135만호 수도권 공급 계획은 서울 집값 상승을 막는 데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10월 대규모 규제지역 지정으로 거래를 틀어막은 뒤 추가 공급을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손에 잡히는 것은 없습니다. 개발제한구역 해제, 유휴부지 활용, 노후 청사 재건축 등이 거론되지만 이는 이미 과거 정부에서도 반복됐던 레퍼토리입니다.
특히 유휴부지 활용은 문재인정부 시절 태릉골프장 등을 포함해 야심차게 추진했다가 주민 반발과 기관 간 이견으로 좌초한 바 있습니다. 그린벨트 해제 역시 이명박정부를 제외하면 제대로 실행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정부가 내놓을 카드가 이 정도라면, 시장이 기대감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더 큰 문제는 서울시와의 협력 구도가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점입니다. 용산정비창 주택 공급 규모를 두고 정부는 확대를, 서울시는 현상 유지를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놓고도 양측의 입장은 엇갈립니다. 정부가 아무리 공급을 외쳐도 서울시의 협조 없이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데, 이 협의 과정이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조직 공백도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주택 공급의 핵심 기관인 LH와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 자리가 오랫동안 비어 있고, 국토부 1차관 자리도 한동안 공석이었습니다. 주택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획기적인 대책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 모릅니다.
결국 정부는 성급하게 내놓았다가 '알맹이 없다'는 비판을 받느니, 시간을 벌면서 좀 더 그럴듯한 방안을 찾겠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시간 끌기가 과연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서울 아파트 시장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수요자들은 공급이 부족하다는 불안감에 서둘러 매수에 나서고 있고, 공급 대책은 계속 미뤄지면서 기대심리만 키우고 있습니다. 정부가 진정 시장 안정을 원한다면, 실현 가능한 공급 방안을 조속히 제시해야 합니다. '신뢰성'을 핑계로 무한정 시간을 끄는 것이야말로 신뢰를 잃는 지름길입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