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서 '딥페이크'라는 단어는 이제 뉴스에서 낯설지 않은 표현이 됐습니다. 다만 지금 이 단어가 불러오는 이미지는 거의 하나로 고정돼 있습니다. 범죄, 조작, 사기, 허위 영상. 딥페이크는 어느새 AI 범죄의 대명사처럼 소비되고 있습니다.
사실 딥페이크의 정확한 의미는 '딥러닝을 활용해 만들어진 가짜 콘텐츠'를 통칭하는 기술적 개념입니다. 선악이 내재된 단어가 아니라, 활용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기술입니다.
그러나 최근 뉴스에서 등장하는 딥페이크는 대부분 연예인·정치인 합성 영상, 성범죄, 허위 정보 유포 같은 부정적 사례에 집중돼 있습니다. 이로 인해 딥페이크는 기술이 아니라 위험한 범죄 수단으로만 각인되고 있습니다.
AI 기술이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전 딥페이크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주목받은 적도 있습니다. 2020년 MBC는 딸 나연이를 먼저 떠나 보낸 어머니가 가상공간에서 딸을 다시 만나는 다큐 프로그램 <너를 만났다>를 선보였습니다. AI 기술을 활용해 짧은 대화와 교감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많은 시청자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또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세상을 떠난 가수를 무대 위에서 다시 만나게 해, 가족과 팬들에게 추억과 위로를 전하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당시 딥페이크는 '조작'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이어주는 기술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최근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과 이와 관련한 대화를 나누며, AI 기술 전반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소비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인식하게 됐습니다.
문제는 이 고정된 이미지가 오히려 모방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딥페이크가 '범죄에 쓰이는 기술'로만 알려질수록, 그 사용법과 파급력이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학습되는 역설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사회가 부여하는 이미지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기술을 위험한 도구로만 바라보면, 그 기술은 결국 위험한 방향으로만 확장됩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활용 사례를 함께 보여주고 윤리적 기준과 사회적 합의를 병행한다면 기술은 사람을 해치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을 돕는 도구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딥페이크를 무조건 미화하는 것도, 무조건 금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딥페이크라는 기술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얼굴을 함께 보여주는 것, 그리고 사회가 그 방향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AI 기술 역시 하나의 이미지에 가둘수록 우리는 그 가능성과 위험을 모두 제대로 다룰 기회를 잃게 됩니다.
MBC <너를 만났다> 방송 화면.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