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는 법을 만듭니다. 행정부는 집행합니다. 사법부는 판단합니다. 그리고 이 세 권력은 서로를 견제합니다. 기원전 그리스에서 등장해 1787년 미국 헌법을 거쳐 1948년 7월17일 한국에 도입된 '삼권분립'의 기본 원칙입니다.
입법·행정·사법부가 동일한 크기의 권력으로 서로를 견제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존재합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은 국민주권주의입니다. 이 아래서 국민의 직접적인 선거로 구성되는 선출 권력(입법·행정부)의 중요성과 민주적 정당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1일 국무회의에서 "선출 권력으로부터 임명 권력이 주어진다"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선출 권력의 우위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무시하는 면죄부가 될 순 없습니다. 사법부는 권력의 다수결 횡포나 남용으로부터 개인의 기본권과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에 민주적 정당성은 간접적이어도 삼권분립의 한 추가 될 수 있습니다. 삼권분립은 세 축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작동하며, 어느 한 축이라도 무너지면 민주주의가 흔들립니다.
최근 이 균형에 파열음이 감지됩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87년 헌법 아래서 누렸던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쓴소리를 했습니다. 여당이 강행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에 작심발언을 한 것입니다.
내란전담재판부는 행정부인 법무부 장관이 판사 추천에 관여합니다. 사실상 선수가 심판을 뽑는 격으로 사법부 독립을 옥죄는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권력 간 경계를 흐리는 개혁은 결국 또 다른 통제의 문을 열 뿐입니다. 입법부가 일시적 정치 유불리에 따라 사법부 구조를 뒤흔들기 시작하면, 결국 개인의 권리 보호 기능이 약화되고 헌법의 수호 기능에 금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선출 권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되, 독립된 사법부가 그 권력이 헌법적 가치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수십 년간 피로 새긴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