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계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금산분리 완화’다. 인공지능(AI) 대전환에 따른 산업 구조 변화와 맞물려 대규모 투자자금 조달을 위한 방안으로 재계가 정부에 이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AI 시대, K-반도체 비전과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김정관 산업부 장관의 반도체산업 전략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일단 AI·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한해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1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국내 자회사(지주회사의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하는 현행 규정을 50% 이상이면 허용하도록 하고, 전략산업이 민간·정책 자금을 설비 확대 등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장기 임대를 통해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이는 방안과 지주회사가 필요한 범위에서 금융리스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재명정부가 ‘AI 3대 강국’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만큼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금산분리를 완화해달라는 재계의 요청이 일정 부분 타당하다고 결론을 내린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전날 ‘AI 시대,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재계의 금산분리 완화 주장에 “일리가 있다”면서 “(금산분리 제한이)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인 만큼 이미 제도적으로 준비 중으로 금산분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금산분리 완화를 요구하는 재계의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다. 소위 ‘쩐의 전쟁’으로 귀결되는 AI 경쟁에서 막대한 ‘돈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다만,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투자금 마련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냐는 점에서는 큰 의문이 남는다.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 합작회사(JV)를 통한 국민성장펀드 출자, 유상증자 등 자금 조달을 위한 다양한 방법론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재벌 기업들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인 대원칙을 손질하는 것이 합당한지는 숙고가 필요하다. 학계에서 ‘신중론’이 대두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금산분리 완화로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를 거느린 SK그룹이 특히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개별 기업에 특혜를 주는 논란을 감내하면서까지 추진해야 할 정책인지도 되짚어봐야 한다.
‘골든 타임’이 중요하긴 하지만, 한 번 쏟은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금산분리 완화가 필연적이라고 한다면, 우려를 잠재울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