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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시장서 K은행 고군분투
입력 : 2025-12-10 오후 4:34:22
최근 몇 년간 한국 금융회사들에게 동남아시아는 성장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제2의 먹거리'로 각광받아왔습니다.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시장을 벗어나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신흥시장에서 활로를 찾겠다는 전략입니다.
 
현재 한국 금융사들이 가장 주목하는 곳은 아세안 10개국 중에서도 가장 넓은 땅과 많은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면적은 한반도의 9배에 달하며, 2억8000만명의 거대 인구를 품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도 5%대의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이어가고 있으며, 대통령제를 택하며 정치 체제 역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바로 금융시장의 잠재력입니다. 급격히 늘어나는 중산층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의 은행 계좌 보유율은 50.4%에 불과합니다. 이는 바꿔 말해, 우리 기업들이 신규 고객으로 유치해야 할 잠재고객이 폭발적으로 넘쳐난다는 의미입니다. 인도네시아에 거점을 마련한 국내 금융사들은 이 거대한 미개척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시장을 향한 길은 험난합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외국계 은행에 대해 매우 두터운 진입 장벽을 세우고 있습니다. 외국계 은행의 현지법인 신규 설립 신청은 거의 대부분 반려되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 금융사들은 법인 신설 대신 현지 은행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을 통해 우회적으로 진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5년대 이후 국내 은행들의 인도네시아 영업이 본격화된 것도 이러한 인수 방식을 통해서입니다. 현지 주재원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가장 큰 '리스크'는 바로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 Otoritas Jasa Keuangan)의 막강한 권한입니다. OJK는 한국의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기능을 합쳐놓은 것과 같은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년 말 인도네시아에서 영업하는 금융사들은 다음해 사업계획을 OJK에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지점과 영업점 수, 심지어 신상품 출시 계획 등 민감한 사업 전략까지 꼼꼼하게 담아야 합니다. 사실상 금융사의 모든 영업 방향을 OJK가 승인하고 통제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더해 해외 금융사에 대한 강력한 인력 규제도 진출의 어려움을 가중시킵니다. 법인 형태로 진출한 국내 은행들이 30여개 영업점을 운영하더라도 현지인만 지점장으로 둘 수 있으며 주재원 수에는 엄격한 제한이 따릅니다. 한국 본사의 경영 노하우나 통제 시스템을 이식하는 데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달리 상대적으로 낮은 GDP와 취약한 신용 인프라를 안고 있어 리스크 관리가 까다롭습니다. 카드사의 경우 진출은 했으나 신용도가 낮은 고객 비중이 높아 수익 창출 자체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사들은 이 치열한 시장에서 발판을 다지고 있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는 총 34곳에 달하며, 신한·하나·국민·기업 등 4대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자카르타의 핵심 업무 지구인 SCBD(Sudirman Central Business District)에 집중 포진해 있습니다. SCBD의 중심 도로인 잘란 수디르만 주변에는 만디리, BRI, BCA 등 현지 상위 3대 은행 본점 사이에 한국계 은행 법인들이 나란히 입점해 있습니다.
 
이들은 현지 은행 인수를 통해 법인 형태로 덩치를 키우며 기업금융, 리테일, 카드, 증권, 자산운용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한국식 선진 리스크 관리 시스템'입니다. 신용 인프라가 미흡한 현지 시장에서, 국내 은행들은 선진화된 신용평가 기법과 철저한 심사 기준을 적용해 건전성을 확보하며 순이익 기반을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도네시아는 거대한 잠재력을 가졌지만, 강력한 정부 규제와 과점화된 시장이라는 이중의 벽에 둘러싸인 곳입니다. 한국 금융사들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단순한 영토 확장을 넘어, 국내의 선진 금융 기법과 현지화 전략의 성공 여부를 시험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소재 Mankuluhur City Building Tower 1층 하나운행 라운지에서 현지 직원들이 커피를 마시거나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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